숙천부(肅川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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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평안도 숙천부 지역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숙천부(肅川府)는 조선시대에 숙주(肅州)에서 숙천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종3품의 도호부사가 관할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평양부숙천군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숙천부는 고려의 평원군(平原郡)으로 불리다가 983년(고려 성종 2)에 숙주방어사(肅州防禦使)가 되었으며, 뒤에 숙주가 되어 종4품의 지주사를 두었다. 조선 태종 때 상주인구 1천 호가 넘는 지역을 도호부로 승격할 때 설립되었으며, 현종 때 강상죄가 일어나 현으로 강등하였다가 다시 회복하였다. 선조 때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왕의 어가가 숙천부에 여러 날 머무르기도 하였다. 다른 이름으로 진국(鎭國), 평원(平原), 숙주(肅州)라고도 불렀다.

조직 및 역할

숙천부는 고려시대의 숙주로 종4품의 지주사(知州事)를 두어 다스리다가 조선이 개국한 후 1406년(태종 6)에 지방 관서와 관리의 칭호를 개정할 때 지주사를 지군사(知郡事)로 개칭하고, 1413년(태종 13)에 행정구역 이름을 숙천군으로 바꾸었다. 1416년(태종 16)에 숙천에 거주하는 인구가 1천 호를 넘어 도호부로 승격하고, 종3품의 도호부사를 두었다. 조선초기 『경국대전』이 편찬된 당시에는 평안도에 모두 6곳의 도호부가 존재했으나 변방의 국방 강화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속대전』이 편찬될 때는 14곳으로 증대되었다. 도호부는 읍격(邑格)상 군수와 목사의 중간에 해당하는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군사적 성격이 강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일반 행정기구로 변화하여 전국에 설치되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그 수가 증대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도호부사와 교수 각 1인을 두었으나 이후에 교수를 폐지하였다. 종6품의 교수는 교관으로 지방에서 유교 교육을 담당하였다. 숙천도호부사는 조선초기에는 영변도우익병마(寧邊道右翼兵馬)를 겸하다가 이후에는 안주진관(安州鎭管)에 소속되어 청남토포사전영장(淸南討捕使前營將)을 겸임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선조가 의주 방면으로 몽진을 떠난 이후 1592년(선조 25) 6월 28일에 숙천부의 관아 기둥에 ‘대가(大駕)가 강계로 가지 않고 의주로 갔다.’는 내용의 글이 내걸리기도 하였다(『선조실록』 25년 6월 28일). 이듬해에는 선조의 어가가 여러 날 숙천부에 머물렀으며, 왕을 모시기 위해 지역민이 어려움을 겪었다 하여 공물을 탕감해 주었다. 조선후기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숙천부 소속 관원으로는 좌수 1명, 별감 3명, 영군관 1명, 창감관 4명, 민고도감 3명, 영중군 1명, 별장 6명, 천총 4명, 교련관 4명, 기고관 4명, 파총 2명, 영장 4명, 초관 16명, 기패관 30명, 부중군 1명, 부군관 1명, 토포행수 1명, 군관 4명, 아전 23명, 통인(通引) 20명, 사령 18명, 군뢰(軍牢) 20명, 관노 85명, 관비 42명이 있었다.

변천

조선이 건국한 후 1413년에 종2품의 관리가 파견되는 고을 이외의 지명에 주(州) 자를 가진 고을을 대상으로 지방행정구역을 개정할 때 군현 이름 가운데 주 자가 있는 지명은 산(山) 자나 천(川) 자로 바꾸도록 하였다(『태종실록』 13년 10월 15일). 이에 고을 이름을 숙주에서 숙천으로 바꾸었다. 1416년에 고을의 인구가 1천 호가 넘어 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670년(현종 11)에 아내가 남편을 죽인 사건이 발생하여 도호부를 현(懸)으로 강등하고 현감으로 격을 낮추었다가 1678년(숙종 4)에 다시 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695년(숙종 21)에는 토포사를 겸하였다. 1895년에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평양부숙천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차문섭, 『조선시대 군제연구』, 단국대학교출판부, 1973.
  • 이존희, 「조선초 지방통치체제의 정비와 계수관」, 『동국사학』15·16 합집,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