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소(緩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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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경종 연간 소론 내에서 발생한 분파의 하나.

개설

경종 연간 소론(少論) 내에서는 노론 세력의 처벌과 남인 세력의 등용 문제를 둘러싼 입장 차이로 완소(緩少)와 급소(急少), 준소(峻少) 등이 나뉘었다. 완소는 이후 영조 연간 탕평 세력의 구축에 중요한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소론은 숙종 초 서인에서 분화된 세력으로, 1721년(경종 1)과 1722년에 있었던 신임옥사(辛壬獄事)의 전개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분리되었다. 이는 상대 당인 노론 세력의 처벌을 둘러싼 이견에서 비롯되었다. 즉 노론에 대해 강경한 처벌 입장을 취하던 세력들이 급소(急少)로, 노론의 처벌 대상을 주모자로 한정하자는 주장과 함께 급소의 맹주인 김일경(金一鏡)에 대해 비판적인 인사들이 완소로 구분된다. 그리고 이들 대결 구도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던 세력들이 준소로 분류되었다.

조직 및 역할

완소는 서명균(徐命均)·윤순(尹淳)·정수기(鄭壽期)·조최수(趙最壽)를 비롯해 조문명(趙文命)·송인명(宋寅明)·박사수(朴師洙) 등이 해당한다[『경종수정실록』 2년 5월 3일]. 이와는 달리 급소 계열은 김일경(金一鏡)·이진유(李眞儒)·박필몽(朴弼夢)·이사상(李師尙)·이명언(李明彦) 등이 해당하며, 중도적인 입장의 준소에는 조태구(趙泰耈)와 최석항(崔錫恒)을 비롯해 이광좌(李光佐)·이태좌(李台佐)·조태억(趙泰億) 등이 해당한다.

변천

완소는 급소와 노론 세력의 처벌 범위를 놓고 대립하였을 뿐 아니라, 급소 측에서 추진하던 남인 심단(沈端)의 등용을 놓고 대립하였다. 즉 완소 측에서는 심단에 대해 늙고 쓸모없다며 그의 등용을 반대하였다. 반면 급소 세력들은 심단을 등용해 남인과 연대하여 노론 세력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소론 내에서 분화된 세력 가운데 급소 세력들은 경종 연간 신임옥사 이후부터 영조 즉위 직후까지 정국을 주도하였으나, 영조대 초반 노론들의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대부분 정계에서 축출되었다. 반면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 완소 세력과 준소 세력들은 정치에 꾸준히 참여하였으며, 완소는 영조 연간 탕평파 형성의 핵심 세력으로 기능하였다.

참고문헌

  • 『당의통략(黨議通略)』
  • 정만조, 「숙종 후반~영조초의 정국과 밀암 이재(李栽)의 정치론」, 『밀암 이재의 연구』,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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