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대(司天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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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천문 관측을 담당하던 관서.

개설

고려시대 천문에 관한 사무를 맡아 보던 관아로 1023년(현종 14)에 태복감(太卜監)에서 사천대로 개명하였다. 천문 관측과 역법 등의 일을 관장하였으며, 고려 성종대에 당나라 관제를 중심으로 한 관제정비로 관직 및 관제가 정비되었다. 사천대는 조선시대 서운관과 관상감의 전신으로 고려시대 천문과 역법의 발전을 이끌었다.

내용 및 특징

사천대는 천문관측 외 역법(曆法)·측후(測候)·각루(刻漏) 등의 일을 관장한 고려시대 천문 관청이다. 천문관측은 군주로서 끊임없이 천문현상을 관찰하여 하늘의 의지를 파악하고 이에 따른 선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천인합일사상(天人合一思想)에 입각한 유교의 도덕사상(道德思想)과도 관련되어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천문 관측은 국가의 중대사의 하나가 되어 일찍부터 천문대(天文臺)가 설립되었으며 천문과 역법을 관장하는 제도가 정비되었다. 고려시대에 있어서 국초에 천문 관측에 관한 제도를 정비하여 1372년(고려 공민왕 21)까지 크게 10차에 걸치는 변화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976년(고려 경종 1) 11월 이전 사천원(司天院) 제도가 있었던 것을 비롯하여, 『고려사』「식화지(食貨志)」 전시과(田柴科) 기사의 목종(穆宗) 원년(998) 개정전시과(改定田柴科)에 태복감·태복소감(太卜少監)·태사령(太史令)·산태복소감(散太卜少監) 등 천문·역법·점복(占卜) 등과 관련된 관직명이 보이고 있어, 적어도 998년 12월 이전 이 분야의 관제가 정비된 것으로 보인다. 관원은 정3품 판사(判事), 종3품 감(監), 종4품 소감(小監), 종5품 춘관정(春官正)·하관정(夏官正)·추관정(秋官正)·동관정(冬官正), 종6품 승(丞), 종7품 주부(注簿), 종9품 복정(卜正)·복박사(卜博士) 등이 있었다.

변천

사천대는 천문과 역수(曆數) 및 측후·각루에 관한 일을 맡아보았으며, 고려 건국 초기에 태복감, 태사국으로 나누어 설치하였다. 이것이 다시 1023년(고려 현종 14)에 태복감을 사천대로 개칭한 것이다. 사천대는 1116년(고려 예종 11)에 사천감(司天監)으로, 1275년(고려 충렬왕 원년)에 관후서(觀候署)로 고쳤다가, 1234년 태사국(太史局)을 합쳐 서운관(書雲觀)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사천대가 황해도 연안 평산도호부 근처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세종실록』「지리지」 황해도 연안 도호부 평산 도호부].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구당서(舊唐書)』
  • 『송사(宋史)』
  • 『원사(元史)』
  • 전상운,『한국과학기술사』, 정음사, 1976.
  • 이희덕, 「고려시대의 천문관과 유교주의적 정치이념」, 『한국사연구』17,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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