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국(工作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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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후 한양에 종묘와 사직을 건축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서.

개설

공작국은 1394년(태조 3) 서울을 한양으로 옮긴 직후 설치되어 종묘와 사직을 건축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 개국 초에 공조(工曹) 전서(典書)이민도(李敏道)가 종묘 세우기를 청하고, 이어 1393년(태조 2)에 영서운관사(領書雲觀事)권중화(權仲和)가 종묘의 구상도(構想圖)를 그려 올렸다. 이에 태조가 서운관의 풍수학인(風水學人) 이양달(李陽達)과 배상충(裵尙忠)에게 지형을 살펴보도록 하고,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김사행(金師幸)으로 하여금 땅을 측량하게 하였다(『태조실록』 2년 2월 10일). 이듬해 공작국을 설치하여 종묘와 사직 건축을 관장하게 했다(『태조실록』 3년 11월 3일).

조직 및 역할

공작국의 조직은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종묘와 사직은 국가의 토대가 되는 상징이고, 각종 공역을 담당한 도감, 색 등이 당상-낭청으로 구성되었음을 미루어 공역을 총관한 당상과 실무를 지휘한 낭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새로 천도한 한양에 왕조의 토대가 된 종묘와 사직을 건축하였다.

변천

1393년에 설치된 공작국의 변천이 어떠하였는가는 불명하다. 그런데 한양의 종묘와 사직 건축공사가 1394년에 완료되었고, 국은 여타의 도감, 소, 색 등이 특별한 일이나 공사를 수행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가 그 일이 완료되면 혁파되는 임시기구였다. 이 점에서 공작국은 1394년 종묘와 사직의 준공과 함께 혁거된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문헌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