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각(文溯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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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전서』를 수장하기 위하여 청대에 건립한 7개의 황실 도서관 가운데 하나.

개설

문소각은 중국 요녕성의 심양고궁 안에 있는 누각이다. 1782년(청 건륭 47)에 중국 절강성 영파(寧波)에 있는 천일각(天一閣)을 본떠 조성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청나라는 북경과 심양 그리고 열하 세 지역에 네 군데의 황가(皇家) 장서각을 건설하였는데, 북경 자금성의 문연각(文淵閣)과 원명원(圓明園)의 문원각(文源閣), 열하 피서산장(避暑山莊)의 문진각(文津閣) 그리고 심양 고궁의 문소각이 바로 그것이다.

심양고궁은 중로(中路)와 동로(東路) 그리고 서로(西路)의 건축군으로 나뉘어 조성되었는데, 문소각은 심양고궁의 서로 건축군에 속해 있다. 앞에는 연극무대와 가음당(嘉蔭堂)이 있고, 뒤에는 황제의 서재인 앙희재(仰熙齋)가 있으며, 앙희재와 같은 공간에는 황제의 수행원들이 묵던 구간전(九間殿)이 있다. 문소각의 바로 옆에는 비정(碑亭)이 있는데, 만주어와 한문으로 세워진 비에는 건륭제가 지은 「문소각기(文溯閣記)」가 기재되어 있다.

문소각은 외관으로는 2층이지만 내부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의 폭은 6칸이고, 세겹처마의 경산식(硬山式) 구조이다. 앞뒤에 복도가 있고, 지붕에는 테두리를 녹색으로 칠한 검은색 유리기와를 얹고, 앞뒤 복도의 처마 기둥도 녹색으로 장식하였다. 검은색의 유리기와를 얹은 이유는 전반적으로 건축물 외관의 풍격을 통일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문과 창문, 기둥에도 녹색 칠을 하였는데, 바깥으로 튀어나온 처마를 장식한 채색화는 남색·녹색·흰색이 뒤섞여 차가운 느낌을 주는 한색(寒色)을 위주로 하였다. 이는 금색과 황색을 위주로 한 궁전들의 처마 장식 수법과는 다른 것이다.

1783년에 『사고전서』를 문소각에 보관하였다. 조선은 『사고전서』의 완성과 보관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듣고 있었다. 1784년 겨울에 『사고전서』 4부를 베끼는 일이 끝나 문연각·문원각·문진각·문소각 등의 전각에 갈라서 보관하였으며, 『사고전서』는 매 부마다 모두 36,000권이나 된다는 것이었다(『정조실록』 9년 4월 19일). 이곳에 보관되어 있던 『사고전서』는 이후 1914년에 북경으로 운반되었다가 1925년 다시 심양으로 보내졌다. 1966년 10월부터는 난주(蘭州)에 있는 감숙성(甘肅省) 도서관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참고문헌

  • 『연행기(燕行紀)』
  • 위안싱페이·장연, 김호림 옮김, 『중국문명대시야』, 김영사, 2007.
  • 유지원, 「‘한궁(汗宮)’에서 ‘황궁(皇宮)’으로; 심양 고궁의 문화적 함의」, 『중국사연구』5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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