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京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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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강 연안을 중심으로 운수업 및 각종 상업 활동에 종사했던 상인.

개설

조선시대 한강변을 중심으로 운수업과 기타 상업활동을 전개한 상인으로 경강상인을 줄여 경상이라 하였다. 경상은 한강 주변뿐 아니라 전국적인 활동망을 가지고 있었다. 초기에는 주로 운송업에 종사하다가 한강변에 상인들의 숙박, 화물유통 등을 담당하는 여각을 설립하여 상업유통의 거점을 마련하고 이후에는 도고로 성장하면서 서울로 통하는 상업 유통권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조선시대 한강 연안에는 크고 작은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용산강, 서강, 한강을 합쳐 삼강(三江)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되었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상인이 발달했다. 한강변에는 전국의 주요 물산이 조운(漕運)을 통해 집적되었다. 15세기 초부터 많은 상인들이 모여 하나의 경제권을 형성하였는데, 경강상인들이 활동을 주도하였다.

이들의 상업활동은 크게 정부의 세곡을 운반하는 일과 나룻배를 운영하는 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의 활동이 크게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다.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세곡(稅穀)의 운송량이 급격히 늘어나자 경강상인의 활동 영역도 그만큼 넓어지게 되었다. 이들이 운영하던 경강선(京江船)의 수와 규모가 늘어나게 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조직 및 역할

17세기 이후 수운과 해운을 통한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한강변으로 인구가 모여들었고 이로 인해 발생한 각종 수요를 충당할 필요성이 증가했다. 이때 경강상인은 한양에 반입되는 다양한 상품을 원활하게 도성 안으로 공급하는 일을 맡았다.

한강의 연안은 전국의 상품이 집하되고 다시 반출되는 지역이므로 여기에 기반을 둔 경강상인의 종류는 다양했다. 도성에서 확대되어 설치된 시전상인, 지방에서 올라오는 선상(船商)을 접대하고 상품 매매를 중개하는 구문을 받는 경강 여객주인, 조세곡 운송을 전담한 경강상인, 전국을 다니면서 지역의 가격차를 이용해 상업활동을 하던 경상 선상, 한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목재를 판매하는 경강 목재상인, 각 지방에서 한강에 도착한 물품을 하역하던 운수업자, 한강의 얼음을 떠서 빙고에 보관하던 장빙업자, 경강이 유흥가의 면모를 갖추게 되면서 주류 등의 판매업에 종사하던 상인 등이 모두 경상의 한 종류였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존재는 여객주인이었다. 조선후기에는 자본 규모가 큰 도매 상인이 창고업과 금융업, 위탁 판매업, 무역업, 숙박업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물품과 화폐, 신용의 흐름을 장악하였다. 그러한 상인이 바로 여객주인이었다. 원래 한강변의 여객주인은 향촌에서 배를 타고 상품을 팔러 올라오는 상인들의 물건을 대신 팔아주고 구문을 받거나,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한양으로 반입되는 물품의 양이 많아지고 여객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자 한강 주변의 상권이 커졌고, 경강상인의 상당수는 여객주인 일에만 종사하게 되었다.

변천

여객주인은 한양의 상품유통 구조에서 시전의 상업 기능을 보조하는 존재였다. 한양에 반입된 상품은 선상에서 여객주인, 시전상인, 중간 유통상인인 중도아, 소비자의 단계로 유통되었다. 그런데 경강상인들이 시전상인을 배제하고 한양의 유통 구조를 장악하여 도고 상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한 첫 번째 배경은 한양과 그 주변 장시의 성장을 들 수 있다. 한양은 명실상부한 전국 최대의 상품 집산지였다. 그런데 한양에 물자를 반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강상인을 거칠 수밖에 없었고 경강상인들은 시전상인을 거치지 않고 한양의 내외 장시에 상품을 유통시켰다. 두 번째 배경은 발전된 육상과 해상의 교통을 통해 전국의 상업 유통을 장악했다는 사실이다. 경강상인들은 각 지역의 생산물이 집하된 각 포구의 주인층과 연계되어 상품을 매입하여 한양으로 공급했고 그것을 주도적으로 관리하였다.

한편 경강상인은 경강선을 이용한 세곡 운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정조는 주교사(舟橋司)를 통해 호남과 호서 지역의 세곡 운송권을 보장해주기도 하였다. 경강상인은 주교사에 소속되어 세곡운송이라는 또 하나의 특권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경강상인의 세력이 커지면서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부당한 이익활동을 하는 일도 점차 늘어나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정경유착의 후유증은 1833년(순조 33)에 쌀 폭동으로 표면화되기도 하였다. 이는 세력가와 경강상인이 결탁하여 쌀 판매를 임의로 통제함으로써 쌀값 폭등을 초래하여 빈민층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참고문헌

  • 고동환, 『조선후기 서울상업발달사연구』, 지식산업사, 1998.
  • 이욱, 『거상, 전국 상권을 장악하다』, 두산동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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