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반원(內班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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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내시부 소속 내관 중 장번내관(長番內官)이 궁궐에서 근무하던 집무실.

개설

내반원은 내시부에 소속되었던 장번(長番)의 내시들이 근무하던 장소이다. 내반원에서는 내시들의 관리와 함께 죄가 있는 내시의 처벌을 담당하였다. 간혹 왕이 피병(避病)을 위해 이곳에 이어(移御)하거나 별도의 임시 관청이 이곳에 설치되기도 하였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내반원은 중국송나라 때의 명칭에서 유래한 것으로, 내시부 소속 내시 가운데 장번이 근무하는 장소이다. 내시부 소속 내관은 당번을 교대하는 출입번(出入番)과 교대 없이 장기 복무하는 장번으로 구별되며, 장번은 대전과 세자궁에 배속되었다. 출입번의 경우는 준수방(俊秀坊: 현 서울시 옥인동 일대)에 설치된 내시부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판단되며, 장번은 궁궐 안의 내반원에서 근무하였다.

조직 및 역할

내반원은 내시부는 지휘를 받아 내시들을 관리하였고, 이와 관련하여 왕의 명을 받아 죄가 있는 내시를 처벌하기도 하였다(『명종실록』 21년 8월 3일). 한편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내시인 승전색(承傳色)은 항상 내반원에 상주하면서 승정원이나 관청의 문서·계사(啓辭)를 왕에게 전달하였다(『경종실록』 1년 12월 29일).

변천

내반원은 조선 건국 직후에는 내소방(內小房)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다가 성종 연간에 내반원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전기 경복궁에서는 경회루의 남문인 경회문(慶會門) 서쪽에 위치하였다(『명종실록』 즉위년 9월 8일). 창덕궁에는 선정문(宣政門) 안 동쪽에 있었는데, 연산군 때 철거되었다가 중종반정 이후에 다시 설치되었다.

내반원은 본래의 용도 이외에 여러 용도로도 활용되었다. 왕이 병이 생기면 편전이나 내전을 피해 이곳에 이어하기도 하였고(『인종실록』 1년 6월 29일) (『숙종실록』 10년 11월 4일), 1604년(선조 37)에는 병이 있는 왕비의 간호를 위하여 왕세자가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하였다(『선조실록』 37년 11월 20일). 또한 1674년(현종 15) 2월에는 왕의 진료를 위해 내반원에 시약청(侍藥廳)을 설치하기도 하였다(『현종실록』 15년 2월 21일).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점필재집(佔畢齋集)』권2, 「내반원기(內班院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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