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주목(綾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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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읍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고려시대 1143년(고려 인종 21)에 나주목에 소속되었던 능성현에 현령(縣令)이 파견되었다. 조선이 건국한 후 1416년(태종 16)에 화순현과 능성현이 합쳐져 순성현이 되었다가, 1418년(태종 18)에 원래대로 각각 돌아갔다. 1455년(세조 1)에 능성이 전라도 나주도(羅州道)의 중익을 맡았다. 1457년(세조 3)에 능성현은 전라도 7진 가운데 하나인 광주진에 속했다. 1594년(선조 27)에는 능성현에 화순현을 편입시켰다가, 1611년(광해군 3)에 다시 복구하였다. 1632년(인조 10)에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본관이라 하여 능성현을 능주목(綾州牧)으로 승격시켰다. 1895년(고종 32)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능주목이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 940년(고려 태조 23)에 능성(陵城)을 능성(綾城)으로 글자를 고쳤다. 『고려사』에는 능성현이 처음에는 나주목에 소속되었는데, 1143년에 현령을 두었다고 되어 있다. 조선 건국 후에도 이것이 그대로 이어졌다. 1416년에 화순현과 능성현이 합쳐졌고, 이때 두 고을의 뒷 글자를 한 자씩 따서 순성(順城)으로 이름을 고치고 현령을 두었다.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1418년에 원래대로 능성현과 화순현으로 각각 복구시켰다. 1594년에 화순현을 능성현에 편입시켰다가, 1611년에 다시 화순현을 설치하였다. 1632년에 인헌왕후의 본관이라 하여 능성현을 능주목으로 승격시켰다.

조직 및 역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능성현에 종5품 현령 1인과 종9품 훈도(訓導) 1인을 둔다고 되어 있다. 현령은 종6품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겸하였다. 훈도는 5백 호 이상인 고을에는 모두 두기로 한 것에 따른 것이다(『세종실록』 12년 1월 21일). 1632년에 인헌왕후의 본관이라 하여 능주목으로 승격시켰다. 정3품직 목사 밑에 중앙 관제와 마찬가지로 이·호·예·병·형·공 6방을 두었다. 목사 아래 향청(鄕廳)의 향임(鄕任)으로 좌수(座首)와 별감(別監) 등을 두었다. 이들은 6방을 나누어 장악하여 목사의 지방 행정을 보좌하였다. 향임은 대부분 부세의 분배와 징수, 향풍의 교정, 향리의 감찰 등을 맡았다.

변천

1416년에 화순현과 능성현을 합하여 순성현으로 개편하였다(『태종실록』 16년 10월 10일). 1418년에 순성현이 다시 화순현과 능성현으로 각각 분리되었다(『태종실록』 18년 7월 8일). 『증보문헌비고』에 따르면 1594년에 화순현을 능성현에 편입시켰는데, 화순현이 왜란 때 크게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 뒤 1611년에 다시 복구하였다. 1632년에는 인헌왕후의 본관이라 하여 능성현을 능주목으로 승격시켰다(『인조실록』 10년 5월 3일).

1455년에는 각 도의 내지(內地)에도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인근 고을을 익(翼)에 분속시켰다. 능성을 비롯하여 나주·광주·남평·영암을 전라도 나주도(羅州道)의 중익으로 삼았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에 각 도의 중·좌·우익을 폐지하고 거진을 설치하였다. 이른바 진관(鎭管) 체제로 바뀌면서 전라도에는 7곳에 거진이 설치되었는데 광주도 그중 하나이다. 능성을 비롯하여 담양·장성·진원·창평·화순·동복이 전라도의 광주진에 속했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진관 체제는 그 뒤로 조금씩 변화를 거치면서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충좌위의 우부(右部)에는 나주진관의 군사가 편성되었다. 능성이 속한 광주진은 나주진관으로 편입되었다.

1641년(인조 19)에는 능주목사가 토포사(討捕使)를 겸하였다. 1664년(현종 5)에는 토포사의 직책을 나주우영장(羅州右營將)으로 이속하였다.

1654년에 전국의 군사제도가 개편되어 전라도는 5영(營)을 두었다. 조선후기에는 나주거진이 전라우영(全羅右營)으로 바뀌었다. 우영(右營)의 속읍은 나주·광주·능주·영암·영광·화순·남평·무안·함평·무장 10곳이며, 우영의 병수(兵數)는 마병(馬兵) 5초(哨), 속오(束伍) 52초, 표하군(標下軍) 210명, 당보군(塘報軍) 120명, 수솔군(隨率軍) 865명으로 되어 있다.

1895년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능주목이 폐지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전국 23부를 다시 13도로 개정할 때 전라남도와 전라북도가 분리되었다. 전라남도는 수부(首府)를 광주에 두었으며, 능주군을 비롯한 32개 군과 제주목의 1목으로 편성되었다. 1908년(순종 1)에 능주군이 화순군을 흡수하였으며, 1913년에는 화순군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칙령(勅令)』
  • 『관보(官報)』
  • 『대동지지(大東地志)』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의안·칙령(議案·勅令)』
  • 김정호, 『지방 연혁 연구-전남을 중심으로』, 광주일보출판국, 1988.
  • 박종기, 『지배와 자율의 공간, 고려의 지방사회』, 푸른역사, 2002.
  • 손정묵, 『한국지방제도·정치사연구(상)-갑오경장~일제강점기-』, 일지사, 2001.
  •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행정사』, 민음사, 1989.
  • 이존희, 『조선시대 지방행정제도 연구』, 일지사, 1990.
  • 『綾州地志·邑誌集成』, 광주대학교 민족문화예술연구소, 1991.
  • 『전라남도지』, 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1993.
  • 『전라북도지』, 전라북도, 1989.
  • 『화순군사』, 화순군사편찬위원회,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