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현(結城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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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지역에 설치하여 주민들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결성현(結城縣)은 조선시대 충청도 홍주목(洪州牧)에 속한 현이다. 1172년(고려 명종 2)에 설립되었다. 15세기에 호수가 304호, 인구가 1,698명이었다. 군정은 시위군(侍衛軍) 7명, 진군(鎭軍) 14명, 선군(船軍) 84명이었다. 토지는 3,251결인데, 이 가운데 논이 1/3 정도를 차지하였다. 1895년(고종 32)에는 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에 홍성군에 병합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결성현은 본래 백제의 결기현(結己縣)인데, 통일신라시대에 결성군(潔城郡)으로 고쳤다. 고려 1018년(고려 현종 9)에 지금의 보령시인 운주(運州)의 임내로 두었다가, 1172년(고려 명종 2)에 글자를 결성(結城)으로 고치고 감무를 두었다. 조선이 건국한 후 양광도 일부 지역이 경기도와 충청도로 개편되면서 충청도 홍주목(洪州牧)에 속하게 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 현감을 두었다.

조직 및 역할

조선후기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수령은 종6품 현감이다. 훈도 1명을 두었다가 폐지하였다. 관속은 18세기 통계에 의하면 좌수(座首) 1명, 별감(別監) 2명, 군관 20명, 지인(知印) 15명, 사령(使令) 15명, 관노 11명, 관비 10명이었다.

변천

조선 때인 1733년(영조 9)에 아버지를 죽인 죄인이 있어서 결성현을 폐지하고 보령현에 편입하였다(『영조실록』 9년 2월 10일). 3년 뒤인 1736년(영조 12)에 원래 있던 현을 다시 설치하였다(『영조실록』 12년 1월 15일). 조선후기에 읍면 8개에서 9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편호는 761호, 인구 2,716명으로 남자 1,348명, 여자가 1,368명이었다. 1759년(영조 35)에 쓰여진 기묘장적(己卯帳籍)에 의하면 토지는 밭 1,200결, 논 1,227결이었다.

1895년의 지방제도 개정 때 홍주부 소속의 결성군으로 승격되었다(『고종실록』 32년 5월 26일). 1896년(고종 33)에 충청남도 결성군이 되었다. 1914년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때 홍성군에 합병되었다.

참고문헌

  • 『결성읍지(結城邑誌)』
  • 『대동지지(大東地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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