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紀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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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화가산현(和歌山縣) 전역과 삼중현(三重縣)의 일부를 일컫던 옛 지명.

개설

고대에서 중세기까지의 행정 구획인 5기7도(五畿七道) 가운데 남해도(南海道)에 있었던 6개국(國) 중 하나였다. 기주(紀州)·기국(紀國)으로도 불리었다.

명칭 유래

목재의 산지이기 때문에 ‘목국(木國)’이라고 하였는데, 713년 『풍토기(風土記)』 편집 때 지명을 두 글자로 하면서 목(木)이 일본 음으로 하면 장음으로 발음되어 그 음에 해당하는 한자인 기이(紀伊)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 기이국(紀伊國)으로 표기하였다.

자연 환경

동쪽과 남쪽은 태평양, 서쪽은 기이수도(紀伊水道) 및 뇌호내해(瀨戶內海)와 접하였다. 태풍과 장마전선이 지나가는 곳에 위치하여 일본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 중 하나였다.

형성 및 변천

646년 일본에서 조정(朝廷) 안의 혁신파가 벌인 대규모 정치개혁인 대화개신(大化改新)을 계기로 국(國)이 되었다. 겸창(鎌倉)시대 초에 지방의 군사와 민정을 감독하는 직책인 수호(守護)가 설치되었고, 남북조(南北朝)시대 이후는 전산(畠山)·세천(細川)·대내씨(大內氏) 등이 수호를 역임하였다.

1410년(태종 10)에 기이에서 객인(客人)이 와서 조선에 토산물을 바쳤다(『태종실록』 10년 9월 7일). 1585년(선조 18) 풍신수길(豊臣秀吉)이 기이 지역을 제압하였고, 강호(江戶)시대에는 덕천(德川) 장군(將軍) 가문의 덕천뢰선(德川賴宣)이 관할하였다. 1871년(고종 8) 명치(明治) 신정부에서 번을 폐지하고, 지방통치기관을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부(府)와 현(縣)으로 일원화한 폐번치현(廢藩置縣)을 시행하면서 화가산현과 삼중현에 분할 편입되었다.

위치 비정

화가산현 전체와 삼중현의 남부 지역에 해당하였다.

관련 기록

『日本書紀』

참고문헌

  • 國史大辭典編集委員會, 『國史大辭典』, 吉川弘文館, 1999.
  • 吉田茂樹, 『日本地名大事典』, 新人物往來社, 2004.
  • 三省堂編修所, 『日本地名事典』, 三省堂, 2007.
  • 平凡社地方資料センタ, 『日本歷史地名大系』, 平凡社,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