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阿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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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의 서남 지역에서 성내로 왕래하던 도로에 있던 고개.

개설

아현(阿峴)은 도성의 돈의문(敦義門)과 숭례문(崇禮門)으로 들어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한강에서 신촌과 청파역(淸坡驛)을 거쳐 올라오거나 수로(水路)를 통해 도성으로 진입하던 교통과 유통의 요지였다.

명칭 유래

아현이라는 이름은 애고개, 아이고개라는 한글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도성에 거주하던 서북쪽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서소문을 통해 시신을 성 외부로 내보냈다. 당시 시신은 만리재, 애고개, 와우산 등에 매장하였다. 애고개라는 이름은 아이들 시신이 많이 매장되어 그렇게 불렸다고도 하며, 만리재보다 작은 형국이라서 작은 고개로 부르던 것에서 나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한 고개를 넘어가기가 힘에 겨워 ‘애고’라고 탄식하던 데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으나 정확한 설은 알 수 없다.

자연 환경

아현은 안산(鞍山)의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줄기에 있는 고개이다. 남쪽에는 만리현(萬里峴), 서북쪽에는 대현(大峴)이 있다. 아현은 그 두 고개 사이의 작은 고개이다.

형성 및 변천

1788년(정조 12)에는 안현(鞍峴) 일대의 아현계(阿峴契)와 연희궁계(延禧宮契), 성산리계(城山里契), 증산리계(甑山里契), 수색리계(水色里契), 휴암리계(鵂巖里契), 구리계(舊里契), 합정리계(合亭里契), 여화도계(汝火島契) 등을 하나의 방(坊)으로 만들었다(『정조실록』 12년 10월 16일).

위치 비정

오늘날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와 마포구 아현동에 걸쳐 있다.

관련 기록

왕이 도성 외부로 행행(幸行)할 때 주요 호위 병력이 배치되는 장소였다. 서쪽 교외에서 척후를 배치한 곳은 숭례문 성벽 위, 창의문(彰義門) 성벽 위, 흥인문(興仁門) 성벽 위, 잠두(蠶頭), 안현(鞍峴), 약현(藥峴), 녹번현(碌磻峴), 북악(北嶽) 등이며, 복병은 숭례문 밖 삼거리, 혜화문(惠化門) 밖 삼거리, 홍제원(弘濟院) 삼거리, 그리고 아현 삼거리 등에 배치하였다(『정조실록』 14년 10월 1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한경지략(漢京識略)』
  • 나각순, 『서울의 성곽』,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4.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지명사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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