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경교(孝經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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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동부의 이현 남쪽의 청계천 위에 놓인 다리.

개설

효경교(孝經橋)는 종로대로의 이현(梨峴)에서 남쪽 낙선방(樂善坊)으로 가는 길이 지나는 청계천 위에 설치되었던 다리이다. 종묘의 정남 방향에 자리했으며, 종로에서 남산으로 가는 도로상에 있었다. 청계천의 하량교(河良橋)와 마전교(馬廛橋) 사이에 위치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영풍교(永豊橋)라고도 하였다. 다리 인근에 장님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소경다리, 맹교(盲橋), 새경다리, 효경다리라고도 불렀다.

형성 및 변천

효경교가 놓인 청계천은 고종대까지 수시로 준천(濬川)을 하여 도성 안의 위생과 홍수에 대처하였다. 고종대인 1879년(고종 16)에는 훈련도감(訓鍊都監)이 수표교에서 효경교까지, 금위영(禁衛營)이 효경교에서 오교(午橋)까지 준천을 담당하였다(『고종실록』 16년 11월 16일).

위치 비정

도성 동부의 이현 아래에 위치한다.

관련 기록

1796년(정조 20) 8월에 포도청의 좌포장(左捕將)신응주(申應周)는 동생 신홍주(申鴻周)가 효경교를 지나다가 낙상하였다는 이유로 심야에 사람들을 모아 그 석교를 헐어 버렸다. 이에 비변사가 신응주를 무겁게 처벌하도록 요청하여, 신응주를 정배시켰으며 야간의 통행금지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훈련대장이한풍(李漢豊)도 파직시켰다(『정조실록』 20년 8월 7일).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경도잡지(京都雜誌)』
  • 『여지도서(輿地圖書)』
  • 『한경지략(漢京識略)』
  • 나각순, 『서울의 성곽』,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4.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의 하천』,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서울지명사전』,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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