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지전(臨津之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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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5월 임진왜란 당시 북쪽으로 향하는 일본군을 막기 위해 조선군이 임진강에서 벌인 전투.

개설

임진왜란 당시 상주와 충주의 패배 소식이 전해지자 선조는 도성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선조는 한강에서 일본군의 북상을 막으려 했지만, 한강 방어선이 무너지자, 임진강에서 일본군을 막도록 하였다. 하지만 임진강 방어선마저 무너지면서 선조는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임진강 전투에서의 패배로 조선은 더 이상 큰 저항을 하지 못했고, 일본군은 거칠 것 없이 북쪽으로 향할 수 있었다.

역사적 배경

신립(申砬)이 충주에서 패전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선 조정은 선조의 피난을 결정하였다. 1592년(선조 25) 4월 30일 피난길에 오른 선조는 이양원(李陽元)에게 4,500명의 군사를 주어 도성을 지키게 하였다. 이와 함께 김명원(金命元)과 신각(申恪)에게는 일본군이 한강을 건너지 못하도록 방어케 하였다.

1592년 5월 2일 한강에 접근한 일본군이 조총을 쏘자 김명원은 임진강 방면으로 달아났다. 한강 방어선이 무너지자 이양원 역시 도성을 버리고 양주 쪽으로 달아났다. 그 결과 5월 3일 일본군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도성에 들어올 수 있었다.

발단

1592년 5월 1일 선조는 개성으로 옮겨간 후 경기관찰사권징(勸懲)과 함경북병사신할(申硈)에게 일본군이 임진강을 건너지 못할 방책을 강구할 것을 명하였다. 도성이 일본군에게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은 선조는 다시 개경을 떠나 평양으로 향했고, 김명원·유극량(劉克良)·박충간(朴忠侃) 등이 임진강을 지키기 위해 권징과 신할의 군사에 합류하였다.

양주 방면으로 퇴각했던 이양원도 함경남병사이혼(李渾)과 합류하여 임진강 방면으로 이동하였다. 이양원과 이혼은 임진강 주변 선박을 모두 침몰시키고, 민가를 철거하여 일본군이 배를 건널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할 수 없도록 하였다. 또 일본군이 강을 건널 수 있을 만한 지역에 병력을 집중 배치하였다.

일본군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선조는 한응인(韓應寅)을 제도순찰사(諸道巡察使), 이성임(李聖任)을 순찰부사에 임명하여 임진강 전선에서 독자적으로 일본군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한편 도성을 점령한 일본군 장수 우희다수가(宇喜多秀家)는 도성에 머물면서 전군을 총지휘하고, 소서행장(小西行長)은 평안도, 가등청정(加藤淸正)은 함경도, 흑전장정(黑田長政)은 황해도, 모리길성(毛利吉成)은 강원도로 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경과

1592년 5월 10일 가등청정이 거느린 일본군이 임진강에 도착했다. 하지만 임진강에는 이미 조선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강 주변에는 배가 없었을 뿐 아니라 배를 만들 목재도 없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가등청정이 거느린 일본군이 조선군과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소서행장은 유천조신(柳川調信)을 조선군 진영에 보내 강화를 요청하였다. 5월 17일에는 소수의 병력만 남긴 채 군사를 파주로 이동시켰다. 아마도 소서행장은 조선군의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 강화를 요청하고 군사를 물렸던 것 같다.

임진강에 도착한 일본군이 움직이지 않자 조선 조정은 조선군의 전투를 재촉하였다. 마침 일본군이 철수하는 것을 지켜보던 조선군은 선제공격을 결정했다. 유극량은 강을 건너 공격한다는 계획에 반대했지만, 여러 장수들의 주장에 밀려 결국 조선군은 일본군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조선군이 강을 건너 공격을 가하자 파주로 이동하는 척하던 일본군이 반격해 오기 시작했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조선군은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특히 강을 등졌던 만큼 조선군은 퇴로를 차단당한 상태였고 신할과 유극량은 전사하고 조선군은 전멸하다시피 하였다.

조선군이 패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박충간은 대열을 이탈했고, 김명원은 평양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임진강을 건널 장비가 없었던 일본군은 임진강 상류 지금의 경기도 연천 부근인 대탄(大灘)으로 이동하였다. 임진강 상류를 지키고 있던 이양원이 거느린 군사는 일본군이 나타나자 아무런 저항 없이 흩어졌다. 이로써 일본군은 임진강을 건너 계속해서 북쪽으로 향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징비록(懲毖錄)』
  • 류재성, 『한민족전쟁사』Ⅲ, 국방부군사연구소, 1996.
  • 온창일, 『한민족전쟁사』, 집문당,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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