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처왜사(十處倭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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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조선에 사인을 파견할 수 있도록 허용받은 10곳의 왜인 사절.

내용

조선은 건국 직후부터 왜구에 대한 방어를 튼튼하게 하는 한편 회유책과 강경책, 외교적인 교섭 등 다양한 왜구 대책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1401년(태종 10)을 전후로 왜구는 감소하였지만 일본으로부터 도항하는 통교자는 증가하였다. 그러나 통교자의 증가는 조선 정부의 치안상의 문제와 재정적 부담이 더욱 가중되었다. 그러던 중 1414년(태종 14)에 대마도주 종정무(宗貞茂)의 사인(使人) 34명 등 사송왜인 105명이 울산(蔚山)에서 머물면서 요청한 종을 늦게 주는 것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항왜 지온(池溫)을 파견하여 대마도주 종정무에게 유시하면서, 앞으로는 일본국왕과 대마도·대내전(大內殿)·소이전(小二殿)·구주절도사(九州節度使) 등 10곳의 왜사[十處倭使] 이외에 사송왜인을 보내지 말도록 요청하였다. 이 10곳의 왜사 중에 일본국왕과 대마도·대내전·소이전·구주절도사 이외의 나머지 5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용례

遣倭池溫 往諭宗貞茂 (중략) 今後日本國王及對馬島大內殿小二殿九州節度使等十處倭使外 各處倭人 毋得出送 上從之(『태종실록』 14년 8월 7일)

참고문헌

  • 한문종, 「조선전기 대일 외교정책 연구-대마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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