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무관(招撫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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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대마도(對馬島) 등 북구주(北九州) 일대의 왜적 상황을 살피고 더불어 납치된 조선인을 되찾아오는 역할을 맡은 관직.

개설

조선을 노략질하는 대마도, 일기도(一歧島)를 비롯하여 북구주 일대의 왜적들의 상황을 살피고 더불어 납치된 사람들을 되찾아오는 역할을 하던 관직이었다.

1443년(세종 25) 7월 22일에 일본인 등구랑(藤九郞)의 건의에 따라 일본의 일기도 등지를 살필 목적으로 강권선을 초무관(招撫官)에 임명하였다(『세종실록』 25년 7월 22일). 일기주초무관(一岐州招撫官)으로도 나타난다. 강권선은 1443년 8월 2일에 일기도로 출발하고, 1444년(세종 26) 4월에 일본인 등구랑(藤九郞)과 함께 일기도에서 왜적 피고실라(皮古失剌), 별고라(撇古羅), 삼패랑고라(三孛郞古羅)의 아들 인입라(因入羅)와 양고(養古)의 사위 마타패(馬打孛) 등을 잡아서 대마도로 왔다(『세종실록』 26년 4월 2일). 이후 강권선은 4월 17일에 부산으로 돌아와서 4월 30일에 왕에게 임무를 보고하였다. 그에 따라 조선은 북구주 일대 왜적의 동태와 상황에 대한 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초무관은 일기도 등 일본의 특정 지역을 살피고 노략질해 간 사람들을 되찾아오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경차관(敬差官) 등이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15세기 중·후반으로 가면서 조선은 직접 사신을 보내 이 지역의 정보를 탐색하기보다는 대마도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일본으로 가는 초무관, 경차관 등은 사라지게 되었다.

담당 직무

북구주 지역의 왜적 상황을 살피고 더불어 납치된 사람들을 되찾아오는 역할을 맡았다.

참고문헌

  • 윤유숙, 「근세 조일통교와 비정례 차왜의 조선도해」, 『사총』 70,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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