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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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 신설된 충청도·전라도·경상도 수군의 총사령관.

개설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는 경상도·전라도·충청도 등 삼도의 수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 일명 삼도통제사, 삼도수군통제사, 통수(統帥) 등으로 불렸다. 1593년(선조 26)에 3도 수사(水使)의 지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신설되었다. 초대 수군통제사로 전라좌수사이순신(李舜臣)이 임명되었다.

담당 직무

삼남 지방, 즉 충청도·전라도·경상도 지방의 수군은 충청도, 전라우도, 전라좌도, 경상우도, 경상좌도 등 5개 도(道)로 분할되어 바다를 방어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 선조는 3도 수사를 통섭할 수 있도록 삼도수군통제사를 신설하였다.

제1대 삼도수군통제사에 전라좌수사이순신이 임명되었다. 이때 선배인 원균(元均)이 이순신의 휘하에 배정되면서 두 장수의 갈등이 시작되었다(『선조실록』 30년 11월 10일). 즉 삼도수군통제사는 종2품으로, 각도 관찰사와 품계가 같고, 수군절도사는 정3품에 해당하였다.

16세기 중엽에 처음 임명된 수군통제사는 19세기 말엽까지 존속하였다. 조선시대 총 208명이 수군통제사로 부임하였다. 임기는 2년으로 규정되어 있었지만, 평균 6~12개월 재임한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1777년(정조 1) 4월 10일에 삼도수군통제사로 이창운(李昌運)이 임명되었는데, 이듬해인 1778년(정조 2) 6월 11일에 장지항(張志恒)으로 교체되었다(『정조실록』 2년 6월 11일).

19세기에 이르러 재임 기간이 더욱 짧아지면서 빈번하게 교체되었다. 예컨대 1856년(철종 7) 8월 22일에 이희경(李熙絅)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는데, 겨우 5개월 만인 1857년(철종 8) 1월 22일에 유상정(柳相鼎)으로 교체되었다(『철종실록』 8년 1월 22일). 또 1866년(고종 3) 1월 29일에 김건(金鍵)이 임용되었다가, 6개월 후인 1867년 7월 21일에 이현직(李顯稷)이 발령을 받았다(『고종실록』 4년 7월 21일).

수군통제사의 주요 임무는 삼도에 파견된 수군절도사를 통솔하여 섬과 바다를 방어하는 것이었다.

변천

수군통제사는 조선중기에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삼도의 수군을 통솔하기 위하여 새로 신설되었다. 주요 임무는 삼도의 요충지에 파견된 수군절도사를 지휘하여 서남 해안을 방비하는 것이었다. 수군통제사는 통제영에 주둔하였고, 16세기 수군통제사가 신설될 당시 통제영은 경상남도 통영의 한산도에 있었다.

그러나 초대 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전라좌수사이순신이 전라좌수영에 파견되어 있었기 때문에 통제영이 전라남도 여수로 이동하였다. 뒷날 통제영은 거제도 오아포(烏兒浦)와 통영의 두룡포(豆龍浦) 등지로 옮겨졌고, 1895년에 지방행정 제도를 개편할 때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