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司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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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종친의 교육을 담당하던 종학(宗學) 소속의 정6품 관직.

개설

1466년(세조 12) 1월에 종학의 전임 관원으로 설치되었다. 이전까지 종학은 성균관 소속의 관원이 겸임을 하던 형태였는데, 이때에 전임관이 생긴 것이다. 종친 교육을 전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치된 지 얼마 안 되어 성균관 소속의 전적이 겸하는 관직으로 다시 개편되었다. 사회(司誨)라는 직명은 이후 존속하기는 했으나 거의 유명무실해졌으며, 1900년(광무 4) 11월 3일 종인학교(宗人學校)를 만들 때 다시 설치되었다.

담당 직무

사회의 주 임무는 같은 종학 소속의 도선(導善)이나 전훈(典訓)과 함께 종친의 교육을 전담했던 것이었다(『성종실록』 24년 10월 12일). 이 밖에 국왕의 경연에 참석하여 학문에 대해 강론을 하기도 하였다(『세조실록』 12년 7월 21일).

변천

1466년 1월에 종학의 전임 관직으로 설치될 당시는, 정6품으로 정원은 2명이었다. 1469년(예종 1) 6월 한명회의 건의로, 종학의 관직을 성균관 관원이 겸직하게 되면서 종학의 도선은 성균관 사성이, 전훈은 성균관 직강이, 사회는 성균관 전적이 겸하도록 하였다(『예종실록』 1년 6월 18일). 이후 1655년(효종 6)에는 종친의 교육을 종부시로 이관하고, 생원이나 진사 가운데서 글을 잘하는 자를 뽑아 맡기도록 하였다(『효종실록』 6년 7월 14일). 이런 조치로 종학이 사실상 폐지되었으며, 사회 역시 이때 함께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고종조 1900년 11월 3일에 종인학교가 만들어지면서 관련 관제가 반포될 때, 교장·도선·전훈 등과 함께 새롭게 설치되었다. 정원은 모두 3명인데 이 중 2명은 주임관, 1명은 판임관으로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