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유장(明油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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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물의 표면에 칠하는 명유(明油)를 만드는 장인.

개설

명유는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기물의 표면을 보호하고 광택을 내기 위해 칠하는 식물성 기름 중 하나이다. 우리 선조들은 전통적으로 고급 기물에는 대개 옻나무 수액인 옻칠(漆)을 하고 일반 기물에는 들기름이나 호두기름·콩기름·동백기름 등과 같은 식물성 기름을 칠해 마무리했다. 명유는 들깨를 짜서 만드는 들기름[荏胡麻油]에 당황단(唐黃丹)이나 무명석(無名石)을 넣고 끓여 만든다.

담당 직무

명유장(明油匠)은 조선시대 경공장(京工匠)으로서 병조(兵曹)군기시(軍器寺)에 속해 각종 기물에 칠할 명유를 제조하거나 명유칠을 담당했다. 가구와 같은 목제 기물 외에도 보졸의 철제 투구에 값비싼 납도금 대신 검정 칠을 하고 명유를 덧칠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군기류와 같은 철제 기물에도 명유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세종실록』 12년 12월 11일). 또한 명유가 궁궐 도색에도 쓰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각종 영건 사업에도 명유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태조실록』 7년 4월 23일). 이 밖에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와 『경모궁악기조성도감의궤(景慕宮樂器造成都監儀軌)』 등 각종 『의궤(儀軌)』기록에서 명유가 사용된 기록을 볼 수 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공전」 ‘경공장’에는 유칠장(油漆匠)이 상의원(尙衣院)과 군기시에 속해 있는데 용례로 보아 유칠(油漆)은 곧 명유로 보인다. 따라서 명유장과 유칠장은 혼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변천

명유장이나 유칠장에 대한 문헌 기록은 조선시대에 처음 나타난다. 그러나 2,000여년에 달하는 목칠 문화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은 명유를 이른 시기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英祖貞純王后嘉禮都監儀軌)』
  • 『경모궁악기조성도감의궤(景慕宮樂器造成都監儀軌)』
  • 『규합총서(閨閤叢書)』
  • 이종석, 『한국의 전통공예』, 열화당, 1994.
  • 정영환, 『중요무형문화재 113호- 칠장』, 민속원, 2006.
  • 강만길, 「조선전기 工匠考」, 『史學硏究 12』, 韓國史學會,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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