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慶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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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남송(南宋) 시대에 영종(寧宗)이 사용한 연호(1195년~1200년).

개설

중국 남송 시대에 영종이 사용한 4개의 연호 가운데 첫 번째 연호이다(1195년~1200년).

경원(慶元) 연간은 영종의 외척으로, 영종 옹립에 공을 세운 한탁주(韓侂胄)가 당시 재상이던 조여우(趙汝愚)를 몰라낸 <경원의 당금(黨禁)> 사건으로 유명한 시기이기도 하다. 경원1년이던 1195년, 권력의 정점에 있던 한탁주는 당시 자신과 대립하던 우승상조여우를 무고(誣告)하여 지방으로 유배를 보냈다. 아울러 조여우가 추천한 주희(朱熹)를 비롯한 이학가(理學家) 59명을 ‘위학역당(僞學逆黨)’이라는 당적으로 몰아, 벼슬에 오르지 못하게 금지하는 등 여러 탄압을 가하였다. 이때의 위학은 거짓 학문이라는 뜻으로 ‘도학(道學 ; 주자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경원의 당금>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는 충신을 탄압한다고 생각하는 경우 <경원의 당금>을 인용하여 충신을 옹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조선(朝鮮)이 주자학의 영향 아래 있던 국가였으므로, 더 적절한 예이기도 하였다. 특히 숙종(肅宗) 대에 송시열(宋時烈)에 대한 탄압이 부당하였다며, 송시열의 무죄를 주장하는 상소들이 이 사건을 많이 인용하였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송사(宋史)』
  • 이현종 편, 『동양연표(東洋年表)』, 탐구당,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