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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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가 제사에서 제상에 올릴 희생(犧牲) 고기를 담는 도마처럼 생긴 그릇.

개설

조선시대 국가 제사에서 소, 양, 돼지 등 희생의 고기를 바칠 때 조라는 나무 그릇을 사용하였다. 조는 모양이 도마처럼 생겨 물건을 올려놓는 데 적합하였다. 제사에 사용할 희생을 도살하면 모혈(毛血), 즉 털과 피 그리고 간료(肝膋)를 각기 쟁반[槃]과 등(㽅)에 담아 올리고 나머지 뼈와 고기를 조에 담아 올렸다. 희생은 날고기를 올리는 경우와 익힌 고기를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모두 조를 사용하였다. 조에 올려놓은 고기를 조육(俎肉)이라고 하며, 제향 때 음식을 준비하는 막사인 찬만대(饌幔臺)에서 조육을 들고 오는 집사자(執事者)를 봉조관(奉俎官)이라 하고, 조육을 제상에 올리는 집사자를 천조관(薦俎官)이라 부른다.

연원 및 변천

고대 중국에 조는 완(梡), 궐(嶡), 구(椇), 방조(房俎)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는데 이들은 다리의 모양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유우씨(有虞氏)가 사용하였다는 완은 네 개의 다리만 있는 것이고, 하후씨(夏后氏)가 사용하였다는 궐은 네 다리에 가로대를 붙인 것이며, 은(殷)나라 때 사용한 구는 다리가 휘어진 것을 가리키며, 주(周)나라의 방조는 위와 아래 사이가 집의 방과 같이 생긴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모두 제사 때 희생의 고기를 얹어 놓을 때 사용하였다. 그리고 제사를 마친 후 제사를 도운 사람에게 희생을 나누어 줄 때 담는 그릇도 조를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예기(禮記)』 「제통(祭統)」에서는 조는 제사에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이 있고, 은혜를 베풀 때에는 균등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제기라고도 하였다.

중국 고대에서는 날고기 희생을 바치는 절차를 조사(朝事)라고 하고, 희생을 익혀서 올리는 절차를 궤식(饋食)이라 하였다. 조사와 궤식 때 희생을 담는 그릇으로 조를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종묘나 사직에서 행하는 대사에는 소, 양, 돼지의 희생을 사용하기 때문에 제향 때에는 6개의 조가 필요하였다. 날고기를 담은 세 개의 조는 제향 전에 제상에 올려놓으며, 익힌 고기를 담은 세 개의 조는 궤식의 절차 때에 올렸다. 전자는 희생의 뼈를 중심으로 7등분한 것을 올리고 후자는 삶은 내장이나 껍질을 올렸다. 조는 음식을 담기보다는 상에 올리는 것과 같이 얹어놓기에 편리하였다. 그리하여 희생을 올릴 때에는 생갑(牲匣)에 희생을 담아서 조에 올려놓았다. 생갑은 나무 상자처럼 만들어져 음식을 담을 수 있었다. 정조대에 삶은 소, 양, 돼지 고기를 하나의 생갑에 담아 올리도록 규정을 고침에 따라 궤식 때에는 1개의 조만을 사용하였다. 이때의 생갑은 하나의 그릇에 3등분으로 공간을 구획하여 음식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도록 한 것을 썼다.

형태

조는 나무로 만드는데 도마와 같이 직사각형 모양의 상판 아래 양쪽으로 2개씩 다리가 있다. 중국 고대에서 상(床)을 사용하기 전 바닥에 음식을 놓고 먹을 때 쓰던 그릇이었기에 탁상 위에서 사용하는 도마보다 다리가 높다.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에 의하면 제향에 사용하는 조는 길이가 1자 8치(약 57㎝)이고 너비가 8치(약 24㎝)이며, 높이는 8치 5푼(약 26㎝)이다. 4개의 다리는 두 개씩 가로지르는 대를 대어 물건을 안정적으로 받칠 수 있게 하였다. 상의 표면은 3등분하여 가운데는 검은 칠을 하고 양쪽 가에는 붉은 칠을 하였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국가 제사에서 사용하는 조는 민간 제사에서 산적 등을 담는 적대(炙臺)와 용도상 비슷하다. 넓적한 판에 짧은 다리나 받침이 있는 적대는 고기별로 구분하지 않고 세 종류의 고기를 쌓아놓는 데에 사용한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 국립문화재연구소, 『종묘제례』, 민속원, 2008.
  • 이욱, 「조선후기 종묘 증축과 제향의 변화」, 『조선시대사학보』6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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