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전(帿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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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무과 시험 중 관혁(貫革) 시험에서 사용한 화살의 일종.

개설

후전(帿箭)은 조선후기에 들어와서 사용한 특수 화살로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히는 성질이 뛰어났다. 이런 특수성으로 인해 조선통신사의 일행으로 일본에 건너간 군사들이 조선 무예를 선보일 때나 청나라 사신들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정확도가 높은 후전을 사용하였다. 또한 후전을 중국에 진상하기도 하였다(『선조실록』 27년 7월 19일).

연원 및 변천

조선후기 무과 시험 중 서서 쏘는 보사(步射) 활쏘기 과목인 관혁 시험에서 사용한 특수 화살로 정확도를 높인 화살이다. 조선후기 보사 과목은 목전(木箭), 철전(鐵箭), 편전(片箭), 관혁(貫革) 네 가지였다. 그 가운데 후전을 사용하는 관혁으로는 길이가 10척 8촌, 너비가 8척 3촌인 넓은 것을 사용하였다. 특히 철전과 목전과는 다르게 150보의 거리에서 정확하게 목표물을 맞혀야만 점수를 주었다. 따라서 후전은 원거리를 날아가도 정확도가 높은 화살이었다. 그리고 문관과 무관에 따라 후전을 사용할 때 과녁의 거리도 달랐는데, 문관은 140보를 쏘았고 무관들은 150~160보의 거리를 쏘았다.

형태

일반적인 화살과 유사하지만 끝이 뭉뚝하여 살상력을 없앤 화살의 형태이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무과총요(武科總要)』
  • 나영일, 『『무과총요』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5.
  • 임선빈·심승구 외, 『조선전기 무과 전시의 고증 연구』, 충남발전연구원, 1998.
  • 심승구, 「조선시대 무과에 나타난 궁술과 그 특성」, 『학예지』10, 2000.
  • 최형국, 「조선시대 기사 시험방식의 변화와 그 실제」, 『중앙사론』2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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