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검(雲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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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호위하는 신하가 패용하는 검으로 원래는 왕의 보검 혹은 그 보검을 패용한 신하.

개설

조선시대에 사용한 긴 외날을 가진 단병기로 환도(環刀)의 일종이다. 운검은 왕을 호위하는 신하가 패용(佩用)하는 검으로 일반 환도보다 장식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나라에 큰 잔치나 회합이 있어 왕이 참석할 때 유능한 무장(武將) 중에서 믿는 사람을 골라서 임명하여 호위하게 하였는데, 그때 좌우에 호위를 맡은 신하가 패용했다. 이에 운검을 패용한 신하를 운검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운검에서 운(雲)은 ‘용이 타고 승천하는 구름’을 상징한다. 따라서 원래 운검은 왕을 용으로 보고 왕을 보좌하는 무사들이 소지했던 보검을 의미한다.

조선전기의 경우 종3품의 대호군(大護軍)이 운검을 받들고 다녔다. 조선후기에는 형식상 정2품의 도총관(都摠管)이 보검(寶劍)이라는 이름으로 운검을 받들고 다녔지만, 이들은 실질적으로 왕을 호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고, 단순히 운검을 운반하는 역할은 운검차비(雲劒差備) 혹은 봉운검수문장(捧雲劒守門將)이라는 하급 무관에게 넘겼다.

이와는 별도로 조선초기부터 2품 이상의 무관 중에서 2명 혹은 4명을 선발하여 운검을 패용하고 왕의 바로 곁에서 호위하도록 했는데, 이들을 별운검(別雲劍) 혹은 운검이라고 하였다. 별운검의 직책은 반드시 무반이 맡은 것은 아니었으며, 한명회(韓明澮) 등 문반 출신도 자주 운검을 맡았다. 조선후기에는 2품 이상이라는 조건도 그리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이들이 소지한 운검 혹은 보검은 일반 환도에 비해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며, 조선전기와 조선후기에 그 형태가 각각 달랐다.

형태

조선전기의 경우 운검의 “칼집은 물고기 가죽으로 싸고, 칠은 주홍색을 사용하고, 장식은 백은(白銀)을 사용하며, 붉은 술인 홍조수아(紅絛穗兒)를 드리우고, 띠는 말위라는 가죽을 사용한다.”고 하였으며(『세종실록』 오례 군례 서례 병기 창·장검·검), 나머지 제도는 환도와 동일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당시 운검은 일반 환도와 마찬가지로 길이가 짧고 구름 문양이 없었으며 칼 띠를 이용하여 허리에 패용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조선후기의 경우 『진연의궤(進宴儀軌)』와 『진찬의궤(進饌儀軌)』에 그려진 운검을 보면, 칼머리 부분에 구름 모양의 운두(雲頭) 장식이 달려 있으며, 2개의 칼집 고리 사이가 환도에 비해 상당히 넓어서 주로 등에 메거나 어깨에 지고 다니기 편하도록 만들어졌다. 또한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정조세자책봉의례도(正租世子冊封儀禮圖)’와 기타 반차도들을 보면, 조선후기 운검의 길이는 일반 환도에 비해 훨씬 길었다. 그러나 육군박물관 패월도(佩月刀)의 예로 보면, 이는 칼집의 길이만 길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칼날은 일반 환도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현재 운검이라고 전해지는 조선후기의 칼들은 운두도 없고 칼집 고리 사이의 폭도 좁으며 칼집의 길이도 일반 환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조선시대의 여러 의궤에 그려진 운검과는 다른 칼이며, 단순히 장식이 화려한 도검이거나 원래 소유자가 별운검의 임무를 맡았을 때 사용했던 환도들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대전회통(大典會通)』
  • 『진연의궤(進宴儀軌)』
  • 『진찬의궤(進饌儀軌)』
  • 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2004.
  • 김성혜 외, 「刀劍의 기능성 연구 : 육군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육군사관학교육군박물관 학예지』6,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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