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후(大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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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의 이수(里數)를 나타내기 위해 30리마다 설치한 큰 장승.

내용

‘후(堠)’는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표시하기 위해 길가에 흙을 쌓아 설치하던 장승을 가리킨다. 1414년(태종 14)에 호조의 청에 따라 30리를 1식(息)으로 정하고 대후(大堠)를 설치하게 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다가 1441년(세종 23) 8월에 평안도는 사신이 왕래하는 지역이라 하여 대후를 세웠는데, 흙과 돌을 쌓기도 하고 혹은 나무를 심어 표시하기도 하였다. 10리 단위로는 소후를 설치하였다.

용례

本國境內 道路息數 遐邇不同 凡差遣及納貢限期 難以預定 請依古制尺量 十里置小堠 三十里置大堠爲一息(『태종실록』 14년 10월 17일)

참고문헌

  • 한우근 외 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 『(역주)경국대전: 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