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黑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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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표면에 자기장이 강하고 온도가 낮아 주변에 비해 검게 보이는 반점.

개설

흑자(黑子)는 고대에 태양흑점(太陽黑點)을 일컫는 용어이다. 흑점(黑點), 일중흑자(日中黑子), 또는 일중흑기(日中黑氣)라고도 했다. 우리가 관측하는 태양의 표면을 광구[photosphere]라고 하는데, 그 광구에 반점처럼 나타난다. 이곳은 주변보다 온도가 낮고 대신 자기장이 강하다. 실제 온도는 절대온도로 4,000~5,000도로 아주 낮지는 않지만 주변 온도가 이보다 높은 약 6,000도라서 상대적으로 어둡게 관측된다.

11년 주기로 흑점의 개수가 많아졌다 적어지는 일을 반복한다. 1645년에서 1715년 사이에는 태양 표면에 흑점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것을 몬더의 극소기[Maunder’s minimum]라고 한다.

내용 및 특징

조선시대 천문 점성의 표준처럼 여겨지던 『천문류초』에 따르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태양 속에 흑점이 있으면, 신하가 임금의 밝음을 가린다고 생각했다.

숙종 때 관상감 천문학교수였던 최천벽(崔天璧)이 쓴 『천동상위고』에 따르면, 신하가 임금의 잘못을 드러낼 때 흑점이 생긴다고 적었다.

태양이 밝을 때는 맨눈으로 보기 힘들지만 큰 흑점의 경우는 해가 뜰 때나 해가 질 무렵 빛이 약해졌을 때 관찰되기도 한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해 뜰 때나 해가 질 때 검은 수정[烏水晶]을 눈앞에 대고 흑점을 관측했다고 한다. 조선후기 영조 때는 망원경 또는 규일안경(圭日眼鏡)으로 흑점을 관측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1818년에 성주덕(成周悳)이 편찬한 『서운관지』에 따르면 일중흑자는 급하게 보고할 사안이 아니고 다만 서면 보고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고려사』에는 태양 속에서 흑자를 관측했다는 기록이 상당히 여럿 나온다. 흑점의 크기는 여러 가지 사물에 견주어 묘사되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다만 몇 개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가장 이른 기록은 태종 때 것인데, “태양 속에 흑점이 있었다. 소격전(昭格殿)에서 태양독초(太陽獨醮)를 지내며 빌었다.”고 하였다(『태종실록』 2년 10월 20일). 임금을 상징하는 해에 변고가 발생하였으므로 액막이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선조 때는 연이틀에 걸쳐 해가 뜰 때 태양 속에 새알 혹은 달걀만 한 흑점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선조실록』 37년 윤9월 2일)(『선조실록』 37년 윤9월 3일).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천문류초(天文類抄)』
  • 『천동상위고(天東象緯考)』
  • 『서운관지(書雲觀志)』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