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유양전(己酉量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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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년(현종 10) 충청도 21개 읍과 황해도 4개 읍에서 시행된 정부의 토지조사사업.

개설

기유양전에서 정부는 충청도의 은루결 조사에 역점을 두었다. 삼남의 진황지 가운데 임진왜란 이후 개간된 토지 결수는 충청도가 가장 적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유양전을 통하여 많은 은루결을 색출하였지만 이에 대한 향촌사회의 반발은 극심하였으며, 이러한 반발 분위기는 기유양전의 폐단을 극단적으로 부각시켰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의 계묘양전은 전국적으로 진황지를 제외한 경작지만을 조사하였다. 이로써 계묘양전 이후부터 갑술양전(1634)에 이르는 동안 각 군현의 진황지에서 개간된 땅은 대개 은루결로 존재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갑술양전은 삼남의 진황지와 경작지를 모두 조사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삼남의 은루결이 조사되었다.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62,000여 결, 경상도에서는 105,000여 결에 비하여 충청도에서 조사된 은루결은 21,000여 결로 매우 적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는 1669년(현종 10) 기유양전에서 충청도의 은루결을 집중적으로 조사하였다.

내용

1669년(현종 10) 정부의 기유양전은 충청도 21개 읍과 황해도 4개 읍에서 시행되었다. 충청도 21개 읍은 홍주(洪州)·공주(公州)·청주(淸州)·충주(忠州)·천안(天安)·목천(木川)·보령(保寧)·청안(淸安)·은진(恩津)·평택(平澤)·니산(尼山)·온양(溫陽)·부여(扶餘)·제천(堤川)·임천(林川)·청양(靑陽)·결성(結城)·정산(定山)·비인(庇仁)·연풍(延豊)·전의(全義)이다. 황해도 4개 읍은 황주(黃州)·안악(安岳)·해주(海州)·평산(平山)이다. 기유양전은 양전 당시 심각한 재해로 흉년이 든데다가 양전이 고르게 시행되지 않아 백성들의 원성을 사는 등 난항을 겪었다. 특히 청주와 충주에서의 폐단이 심하였다.

변천

기유양전은 폐단이 심하여 재양전 논의가 있었지만 시행되지 않았다. 1720년(숙종 46)의 경자양전을 통하여 기유양전의 폐단이 정리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사연구회 토지대장연구반, 『조선후기 경자양전 연구』, 혜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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