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公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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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후 중앙과 지방의 관서에서 공적인 용도로 보관하거나 비축한 화폐 자산.

내용

상평통보가 보편적으로 유통되었던 18세기 이후, 중앙과 지방의 관서에서 공적인 용도로 보관하거나 비축한 화폐 자산을 공전(公錢)이라 칭하였다. 1811년(순조 11) 평양의 시전(市廛)이 조잔하고 허물어진 상태에 이르자, 공전을 빌려주었으며, 1861년(철종 12) 곡산(谷山)에서 홍수가 나서 500여 호(戶)가 물에 잠기거나 무너져서 가산이 탕진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을 때, 다시 집을 지어 정착하게 하는 방도와 함께 공전을 회감(會減)하여 진휼의 경비를 조달하였던 조정의 지시가 내려진 바 있었다. 이처럼 민간 부문의 피폐상이나 재해를 극복할 수 있도록 관서에서 비축한 화폐 자산을 동원할 때 공전이라는 표현을 썼다.

용례

全羅監司鄭獻敎 以順天府亂民作鬧事馳啓 仍請該府使徐臣輔 罷黜 敎曰 驅打之不足 至於戕殺 燒毁之不足 至於搶掠 公錢公廨之無難犯手者 是何等大變怪也 近日嶺湖幾多邑頑悖之徒 一未聞以法徒事 則此所以無所懲畏 去而益甚也 令廟堂稟處 (『철종실록』 13년 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