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전세(軍資田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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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전에서 거두어들인 전세.

내용

수취된 군자전세는 일부가 서울의 군자창(軍資倉)에 운반·보관되었지만, 대부분은 지방 소재의 국고(國庫)에 그대로 보관되었다. 그리고 군자전세의 출납 운영은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제 아래 일원화되어 있었다. 한편, 군자전세의 지출 용도로는 군량과 진휼곡이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 밖에 사대교린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비도 모두 군자전세로 충당되었다. 또한 군자전세는 중앙정부와 지방관청의 부족한 재정을 보조해 줌으로써 국가 재정의 합리적인 운영을 위한 예비 재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결국 군자전세는 중앙집권적 양반신료 체제(兩班臣僚體制)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국가 재원이었던 것이다.

용례

戶曹啓 今承傳敎 慶尙道軍需不裕 其上道田稅 納于京中 中道以下田稅 各其州倉收納節目 商議以啓 臣等參詳本道所儲 軍需果不裕 請限周足 尙州善山安東醴泉榮川金山知禮豐基開寧龍宮奉化仁同聞慶咸昌軍威義城比安禮安等十八邑軍資田稅 依前上納 慶州晋州星州昌原金海寧海密陽靑松大丘陜川咸陽草溪淸道永川興海蔚山梁山咸安昆陽盈德慶山東萊固城巨濟南海居昌三嘉宜寧迎日長鬐靈山昌寧泗川機張熊川等四十八邑軍資田稅 各納邑倉 從之 [『성종실록』 성종 8년 윤2월 28일 5번째기사]

참고문헌

  • 김옥근, 「조선전기 재정정책의 전개과정 분석-군자정책의 전개-」, 『수산경영연구』 1, 부산수산대학교, 1970.
  • 오정섭, 「고려말·조선초 각사위전을 통해서 본 중앙재정」, 『한국사론』 27,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92.
  • 이장우, 「조선초기 군자전에 대한 일고찰」, 『역사학보』 118, 1988.
  • 이명화, 「朝鮮初期 군자정책과 운영실태」,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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