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료병포(戶料兵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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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일반 관청의 상급 관원으로부터 하급 이예에 이르기까지 지급되는 급료 중 요미는 호조에서, 요포는 병조에서 지급하였기 때문에, 이를 아울러서 부르는 말.

내용

조선후기 호료병포(戶料兵布)는 호료(戶料)와 병포(兵布)를 함께 지칭한 것이었다. 호료는 호조(戶曹)의 각종 세미(稅米) 수입으로 구성되었으며, 병포는 비상번병(非上兵番)·군보(軍保) 등으로부터 실역을 부담하지 않는 대가로 병조가 거두어들이는 군포 수입으로 이루어졌다.

호료병포는 관청의 원역(員役)에게 급료로 지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정기적인 잡역이 있을 때 고용되는 인부들의 고가로도 지급되었다. 호료병포는 17세기 이후 모립제 하에서 모군의 고가(雇價)를 위한 재원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1677년(숙종 3) 남별전(南別殿) 중건, 1744년(영조 20) 숙종 명릉(明陵)의 개수(改修), 1764년(영조 30) 수은묘(垂恩廟) 영건, 1783년(정조 7) 영조 원릉(元陵)의 개수, 1785년(정조 9) 영우원(永祐園)의 보토(補土) 공사 등에서 호료병포만으로써 모군·장인 등의 고가를 마련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용례

命宮墻修築 依都城例 三軍門各就所管字內擧行 修築時 亦依都城例 劃給戶料兵布 是日命諸將臣 看審形趾 自景秋門宮墻始築 以纔經賊變也 (『정조실록』 1년 8월 10일)

참고문헌

  • 윤용출, 『조선후기의 요역제와 고용노동』,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