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과초시(譯科初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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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식년에 보는 역과의 첫 단계 시험.

개설

역과초시(譯科初試)는 사역원시(司譯院試)와 한학향시(漢學鄕試)로 구분되며, 합격 정원은 식년시와 증광시 모두 57명으로 동일하였다. 시험 주관은 사역원에서 담당하였다.

내용 및 특징

역과에는 한학(漢學)·몽학(蒙學)·왜학(倭學)·여진학(女眞學)[청학(淸學)] 등 4개 전공이 있었으며, 한학이 가장 중시되었다. 초시는 간지가 인(寅)·신(申)·사(巳)·해(亥)에 해당하는 식년 전해 가을에 시행하였다. 서울에서 실시하는 사역원시와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실시하는 한학향시로 구분되었다. 사역원시 정원은 한학 23명, 몽학 4명, 왜학 4명, 여진학 4명이며, 한학향시는 황해도 7명, 평안도 15명으로 모두 57명이었다. 여진학은 1667년(현종 8)에 청학으로 개칭되었다.

사역원시는 사역원에서, 한학향시는 관찰사가 황해도와 평안도 도내의 군현 중에서 한 곳을 각각 정하여 시험 장소로 활용하였다. 시험관은 사역원시는 사역원제조(司譯院提調)가 하되 겸교수가 동참하고 사학관(四學官) 각 2명이 각 과목별 시험을 주관하여 선발하고, 한학향시는 황해도와 평안도관찰사가 차사원(差使員)을 정하여 녹명(錄名)해서 시험하여 뽑았다. 시험 절차를 보면 먼저 과거 응시자의 자격을 심사하여 응시 원서를 접수하던 녹명을 하고 시험을 보게 하였다.

시험 과목은 전문서와 사서(四書), 그리고 『경국대전』을 필수과목으로 하였다. 시험 방법은 강서(講書)·사자(寫字)·역어(譯語)로 구분하였다. 사서는 임문고강(臨文考講)하게 하고, 『노걸대』·『박통사』·『직해소학』은 배송(背誦)하였다. 역어는 한학·몽학·왜학·여진학은 모두 임문으로 『경국대전』을 번역하였다. 역과 시험 과목은 『속대전』 이후 축소되는 방향으로 변경되었다.

1765년(영조 41)에 영조는 역과초시에 합격한 사람을 불러들여서 강(講)하였던 바를 외우게 하고 번갈아 서로 맞대어 문답할 것을 명하였다(『영조실록』 41년 3월 21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통문관지(通文館志)』
  • 『역과방목(譯科榜目)』
  • 이남희, 『조선후기 잡과중인 연구』, 이회문화사, 1999.
  • 이남희, 「조선후기 잡과교육의 변화와 특성」,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13-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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