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제(學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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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합제의 준말로 1년에 4번 성균관 대사성이 사학의 유생들에게 보게 한 시험.

개설

사학(四學), 즉 동학(東學)·서학(西學)·남학(南學)·중학(中學)의 합제(合製)로 사학의 유생들에게 1년에 4번 제술(製述)과 고강(考講)으로 시험을 보게 하였다. 시험 과목은 제술에서 부(賦) 1편, 고시(古詩) 1편이고, 고강에서는 사서(四書)를 암송하게 하였다. 성적이 우수한 사람에게 생원진사시 복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생원진사시의 초시와 같은 성격의 시험이었다.

내용

학제는 사학의 합제를 말하며 사학의 유생들에게 학업을 권장하기 위하여 실시하였다. 제술시험은 사학의 관원이 사학 유생을 시(詩)와 부(賦)로 시험하여 한 번에 사학마다 5명씩 20명을 선발하였다. 매년 네 차례에 걸쳐 1년에 모두 80명을 시취하였다. 연말에 성균관 관원과 사학의 학관이 성균관에 모여 이들을 다시 합제하여 8명을 뽑아 생원진사시 복시에 직부하는 자격을 주었다.

고강은 사학의 관원이 사학 유생들에게 사서 또는 『소학』을 외우게 하여 한 번에(1번에) 사학마다 소학 5명, 사서 5명씩 40명을 선발하였다. 4번에 걸쳐 모두 160명을 시취하였다. 연말에 성균관 관원과 사학의 학관이 성균관에 모여 다시 합강(合講)하여 소학 8명, 사서 8명을 뽑아 생원진사시 복시에 직부하게 하였다.

고강에 응시자가 적어 1664년(현종 5)에 제술과 고강의 인원을 바꾸어 제술 16명, 고강 8명(소학, 사서 각 4명)으로 고쳤다. 선발 인원은 다시 수정되어 영조대 『속대전』에서 정비하였다.

『속대전』에 의하면 제술은 부 1편, 고시 1편을 시험하여 한 번에 사학에서 40명을 시취하여 1년에 160명을 뽑았다. 연말에 성균관 대사성이 이들을 합제하여 16명을 시취하였다. 고강은 사서 또는 『소학』을 외우는 것으로 시험하여 한 번에 사서에 10명, 소학에 10명씩 시취하여 1년에 모두 80명을 뽑았다. 연말에 성균관 대사성이 합강하여 8명을 시취하였다. 1년간 뽑힌 제술에서 160명, 고강에서 80명 총 240명 중 합제로 16명, 합강으로 8명을 뽑아 생원진사복시에 직부 자격을 주었다.

사학합제는 국가에서 치르는 시험으로 법식에 따라 시취하지 않았을 경우에 사학의 관원들에게 죄를 물었다(『현종실록』 10년 3월 10일).

사학합제로 생원진사시에 직부된 사람의 명단은 1792년(정조 16) 식년시 사마방목부터 부록에 수록되었다.

변천

사학합제에는 상피법이 적용되지 않아 시관의 자제나 친척들도 응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관과 유생이 잘 아는 사이이면 청탁을 들어주거나 정실에 치우쳐 불공정하게 운영되는 문제점이 있었다(『숙종실록』 25년 3월 11일). 여러 차례의 논의를 거쳐 1783년(정조 7)에 『대전통편』에서 상피법을 적용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 『속대전(續大典)』
  • 조좌호, 『한국과거제도사연구』, 범우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