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례문(敦禮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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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편전인 선정전 남쪽에 위치한 삼문.

개설

돈례문(敦禮門)은 창덕궁의 선정전(宣政殿) 남행각에 위치한 문으로 양쪽에 협문을 갖춘 삼문(三門) 형식이다. 선정전의 남행각은 이중으로 구성되어 이중행각에 각각 삼문이 설치되었는데, 내삼문을 돈례문이라 하고, 외삼문을 선정문(宣政門)이라 한다.

1561년(명종 16)에 돈례문에 벼락이 쳤던 일을 기록할 때, 돈례문을 ‘선정전의 어문(御門)’이라 하였다. 다음 날에 상참을 행하기 위하여 돈례문에 왕을 상징하는 깃발을 내다 놓았는데, 이곳에 벼락이 내려 깃대와 문선이 부러지는 일이 있었다(『명종실록』 16년 4월 8일).

위치 및 용도

돈례문은 선정전의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경계가 되는 문이다. 선정전에서 의례를 행할 때 왕의 막차를 돈례문 밖 동쪽에 설치하고 의례가 시작되면 돈례문을 통해 선정전으로 들어선다.

1659년(현종 즉위)에 현종이 즉위식을 행할 때 사례를 살펴보면, 돈례문의 동쪽 협문에 막차를 설치하고 면복을 갖추어 입고 막차에서 나와 선정전 동쪽 마당을 통해 빈전에 들어 대보(大寶)를 받는다. 그리고 돈례문의 서협문을 통하여 선정문의 동협문을 경유하고 연영문(延英門)과 숙장문(肅章門)을 지나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식을 행하였다(『현종실록』 즉위년 5월 9일).

선정전에서 빈전 의례를 행할 때는 돈례문이 빈전의 정문이 되었다. 돈례문 밖에서 문무백관의 배례가 이루어졌다. 돈례문 안으로 들어서서 빈전 안에서 의례를 행하는 사람은 의례를 인도하는 통례(通禮)와 헌관에 한정되었다.

변천 및 현황

돈례문은 본래 이름은 융례문(隆禮門)이었다. 1497년(연산군 3)에 왕의 이름과 같은 음을 갖는다 하여 ‘융(隆)’ 자를 ‘돈(敦)’ 자로 바꿔 돈례문이라 하였다(『연산군일기』 3년 1월 9일).

18세기 후반부터 돈례문이라는 이름은 기록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동궐도(東闕圖)」에 선정전 남행각의 외삼문에는 선정문이라 기록하였으나, 내삼문에는 문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아마도 19세기 이후 선정전을 혼전으로 사용하면서 돈례문의 현판을 떼어내고 혼전의 이름을 붙여 사용하면서 점차 잊혔던 것으로 생각된다.

1904년(광무 8)에 경운궁에서 화재가 일어난 이후 경운궁 내에 명성왕후(明聖王后)의 신주를 봉안하는 경효전(景孝殿)을 건립하였는데, 경효전의 외삼문도 돈례문이라 하였다. 고종대에 기록된 돈례문은 경운궁 즉 덕수궁 내에 위치한 문이다.

참고문헌

  • 「동궐도(東闕圖)」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