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당(延吉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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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강녕전 동북쪽에 있는 부속 전각.

개설

연길당(延吉堂)은 고종대에 경복궁을 중건할 때 지은 강녕전(康寧殿) 부속 전각으로 서쪽의 응지당(膺祉堂)과 짝을 이루는 작은 건물이다.

위치 및 용도

경복궁의 내전인 강녕전 일곽에는 강녕전과 더불어 연생전(延生殿), 경성전(慶成殿)의 양 소침, 연길당, 응지당의 부속 건물 등이 포함되었다. 이들 전각은 강녕전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배치되었으며 상호 연결되었다. 이로 보아 강녕전에서 왕의 일상생활 및 업무를 보조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변천 및 현황

연길당과 응지당은 조선전기의 경복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전각이다. 고종대에 경복궁을 중건할 때, 새로 조성한 전각으로 서로 동서로 짝을 이루며 배치되었다. 1917년에 창덕궁 화재로 내전 전각들이 소실되어 경복궁 전각을 헐어 복구할 때 사라졌다가(『순종실록』 10년 11월 27일), 1995년에 경복궁 복원정비공사를 통해 복원되었다.

형태

정면 4칸, 측면 3칸의 모두 12칸으로 정면에서 보아 동쪽 2칸은 대청으로, 서쪽 2칸은 방으로 구성되었다. 전면에는 퇴칸을 두었다. 『진찬의궤(進饌儀軌)』「강녕전진찬도(康寧殿進饌圖)」에는 서로 복도로 연결되었다. 연결 복도는 1868년(고종 5)과 1892년(고종 29)의 의궤 도식에 서로 다르게 묘사되었다. 애초에 상설 복도로 조성되었던 것을 경복궁 화재 이후 가설 복도로 바꾼 것으로 여겨진다. 보통 동서로 짝을 이루는 전각이 대칭으로 구성되는 것과 달리 연길당과 응지당은 모두 동쪽의 대청, 서쪽의 온돌방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 『진찬의궤(進饌儀軌)』「경복궁배치도(景福宮配置圖)」「북궐도형(北闕圖形)」
  • 문화재청, 『조선시대 궁궐 용어해설』, 문화재청, 2009.
  • 경세진·조재모, 「조선후기 궁중연향시 숙설소와 중배설청의 배치와 운영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계획계』24권 6호, 2015.
  • 조재모, 「조선시대 궁궐의 의례운영과 건축형식」,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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