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암산성(雲暗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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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철산군에 위치한 산성.

개설

평안북도 철산군에 있는 산성으로 인조대에 수축하였고, 숙종·영조대에 증축이 이루어졌으나 최초의 축성 시기는 알 수 없다. 지세가 험준하고 방어에 유리하였다.

위치 및 용도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에 위치한 산성으로 험준한 지형을 끼고 있으며 방어에 유리한 군사시설이었다.

변천 및 현황

1631년(인조 9) 정충신(鄭忠信)이 백성의 소원에 따라 철산(鐵山)의 운암산성을 수축할 것을 급히 청하여 공사가 이루어졌다(『인조실록』 9년 8월 21일). 1684년(숙종 10)에도 산성의 보수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는데 이때에 평안감사신익상(申翼相)이 “운암산성은 지세가 험준하고 견고하니 중군(中軍)을 가려 차출하고 곡식을 쌓아 두고 백성을 모으소서.”라고 아뢰었는데 이 기사로 보아 운암산성이 험준한 지세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임을 알 수 있다(『숙종실록』 10년 4월 18일). 1724년(영조 1) 호조 판서오명항(吳命恒)이 “4군의 경계로부터 충천령(衝天嶺)·설한령(薛罕嶺)이 서북을 가로막고 있고 적유령(逖踰嶺) 한 줄기는 곧바로 운암산성의 해변에 이르러 멈추었는데, 이는 실로 하늘이 만들어준 요해지였습니다.”라고 보고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영조실록』 1년 10월 15일).

1811년(순조 11)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 반란군이 운암산성에 주둔하기도 하였다(『순조실록』 12년 1월 21일).

형태

산성 안에 장교가 근무하는 장소인 장청(將廳), 곡식 등을 보관하는 창고 산창(山倉), 병장기를 보관하는 군기고가 있었다. 성 밖에 큰 전승굴(戰勝窟)이 있는데 정묘호란 때 김은상(金殷祥)이 청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축하하는 축첩연(祝捷宴)을 베풀었던 곳이다.

관련사건 및 일화

참고문헌

  • 『여지도서(輿地圖書)』
  • 『철산읍지(鐵山邑誌)』
  • 『鐵山郡誌』, 철산군지편찬위원회, 1976.
  • 허경진, 『한국의 읍성』, 한국문학도서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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