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고수장각(山高水長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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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훈련과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용도로 사용된 중국 북경 원명원 내의 전각.

개설

산고수장각은 원명원(圓明園) 본원의 서남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군대를 훈련하거나, 외국 사신을 위한 연회를 베푸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위치 및 용도

산고수장각은 원명원 본원의 서남쪽에 있다. ‘산고수장(山高水長)’이란 이름은 건륭제(乾隆帝)가 명명하였다. 멀리 서산(西山)을 마주하고 있고 앞으로 물을 두르고 있어, 서광(西廣)·서광자(西廣子)·서원(西苑)·서원(西園) 등으로도 불리었다. 사열대가 있어 시위 및 군사들의 군사훈련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또한 외국 사신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옹정제(雍正帝)는 인견루(引見樓)라고도 불렀다.

형태

산고수장각은 남북으로 460m, 동서로 280m, 부지 12,880,000㎡, 건축면적 2,500㎡였다. 전각은 앞의 기둥이 12개이며, 2층으로 구성되었다. 전각은 단청을 칠하지 않았다. ‘산고수장(山高水長)’이란 네 글자로 편액을 하고, 침향목(沈香木)으로 난간과 기둥을 하였다. 위층의 창은 모두 커다란 유리를 끼웠다. 뜰에는 침향목으로 꽃나무가 뒤얽혀진 형상을 만들었다. 누각 위 처마 밑에 양각등(羊角燈)을 달고, 섬돌 좌우에는 채색 포장을 하였다. 포장 안에는 푸른 종이로 가산(假山)을 만들어, 그 위에 각각 채색한 등을 달았으며, 수십 보 사이에 단향(丹香)으로 엮어 울타리를 만들고 가운데에는 정로(正路)를 두었는데, 길을 동서로 해서 청나라의 관원 및 여러 사신이 늘어섰다. 당대 모습은 건륭제가 원명원 안의 아름다운 경관지 40곳에 각각에 이름을 짓고 궁정 화가였던 심원(沈源)과 서법가 왕유돈(汪由敦)에게 그리게 한 『원명원사십경도영(圓明園四十景圖詠)』을 통하여 살필 수 있다.

관련사건 및 일화

해마다 조선의 동지사 및 각국의 외교사절은 원소절(元宵節) 전후 산고수장각에서 벌어지는 의식에 참여하여 연희를 관람하였다(『정조실록』 9년 2월 14일)(『정조실록』 12년 2월 25일)(『정조실록』 17년 2월 22일). 조선 사신은 산고수장각에서 등불놀이[燈戱]나 깃털을 모자에 꽂고 등에는 그림이 그려진 방패를 지고 춤추는 간우무(干羽舞), 또는 서양식 그네를 타고 공중에서 공연을 하는 홀유유(忽悠悠) 등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 『심전고(心田稿)』
  • 왕롱주 지음, 김승룡·이정선 옮김,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 한숲, 2015.
  • 이창숙, 「燕行錄에 실린 중국 演戱와 그에 대한 조선의 인식」, 『韓國實學硏究』 2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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