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호정(望湖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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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서호 일대의 한강 조망을 즐겼던 정자.

개설

망호정(望湖亭)은 서호(西湖) 일대에 지은 정자로 주로 문신들이 내방하여 학문에 매진하며 승경(勝景)을 감상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절경으로 유명한 터라 유명한 시인들도 종종 방문하여 이곳에서 시를 짓고 남겼다.

위치 및 용도

망호정은 양천현(陽川懸, 현 서울특별시 양천구) 관아의 객사(客舍)인 파릉관(巴陵館) 동쪽에 위치하였다. 현재 강서구 가양동에 속한다. 1426년(세종 8)에 학식이 뛰어난 관리들에게 휴가를 주고 독서와 학문에만 전념하도록 ‘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를 시행하며 독서당(讀書堂)에서 즐기도록 하였다. 독서당은 주로 경치가 좋고 한적한 한강변에 설치하였는데, 망호정은 이러한 독서당의 역할을 했다. 주위의 수려한 수변경관을 감상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으며, 문인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였다. 독서당의 기능은 정조 때 규장각(奎章閣)을 신설하면서 소멸되었다(『정조실록』 5년 2월 13일).

변천 및 현황

망호정이 있던 일대는 예로부터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강변의 뛰어난 절경이 유명한 터라 승경 조망의 목적으로 정자를 세웠다. 지은 사람은 알 수 없으며, 현재는 소실된 상태이다. 객사의 동쪽 강변에는 망호정 외 악양루, 상문정이 있었으나 3개의 누정 모두 소실되었다. 이 중 악양루 자리에 지금의 소악루(小樂樓)를 세웠다.

관련사건 및 일화

세종대에 이래(李來)와 유사눌(柳思訥)이 이곳에서 「망호정」이라는 제목의 시를 각각 지어 후대에 남겼다. 또한 영조대에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그린 「소악후월(小岳候月)」과 「금성평사(錦城平沙)」 등의 진경산수화를 통해 망호정과 그 주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금성평사」는 정선이 금성촌(현 성산동)과 난지도 모래벌을 양천현 관아 동쪽 망호정 부근에서 바라보고 그렸다.

참고문헌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신동국여지승람(新東國輿地勝覽)』
  • 서울강서문화원, 「강서문화와 역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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