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당(光華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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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 함녕전(咸寧殿) 동쪽에 있으며, 고종의 후궁이었던 귀인이씨가 거처하던 건물.

개설

광화당(光華堂)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귀인이씨(貴人李氏)가 거처하던 건물이다. 또한 귀인이씨의 당호이기도 하다. 1914년에 고종의 후궁이었던 귀인이씨가 덕수궁에서 아들을 낳자, 왕은 아들의 이름을 이육(李堉)이라 하고, 귀인이씨에게 ‘광화당’이라는 당호를 내려주었다(『순종실록부록』 7년 7월 3일). 광화당(光華堂) 이씨(李氏)가 당호를 받고 한 달쯤 지나 덕수궁 내에 광화당 이씨를 위한 건물을 건립하는 비용으로 1,000원이 지급되었다(『순종실록부록』 7년 8월 27일). 이때 영복당(永福堂) 뒤쪽에 광화당 건물이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위치 및 용도

광화당은 함녕전의 동쪽에 있는 영복당 영역의 동북쪽에 있다. 광화당의 북쪽에는 양심당(養心堂)이 있으며, 남쪽에는 복녕당(福寧堂)이 있다. 광화당을 비롯하여 영복당, 삼축당(三祝堂), 복녕당, 보현당(寶賢堂) 등은 모두 후궁의 처소였다.

변천 및 현황

1914년에 귀인이씨에게 광화당이라는 당호를 내리고, 영복당 뒤쪽에 건물을 마련하였다. 1907(융희 1)~1910년(융희 4)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경운궁중건배치도(慶運宮重建配置圖)」에는 영복당 뒤쪽에 광화당이 없다. 그러나 1938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덕수궁지도」에는 영복당과 삼축당의 영역 동북쪽에 광화당이 있다. 1919년(순종 12)에 고종이 승하한 뒤, 1923년(순종 16)에 덕수궁 내에 거처하던 후궁들을 위하여 궁궐 밖에 건물을 마련해 주었다.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간동에 광화당 이씨와 삼축당 김씨가 함께 살던 집이 남아 있다.

관련사건 및 일화

광화당 이씨의 본래 이름은 이완덕이다. 덕수궁의 나인이었으나, 22세에 후궁이 되었다. 1914년에 왕자 이육을 낳아 ‘광화당’이라는 당호를 받았다.1916년(순종 9)에 왕자가 죽고, 1919년에는 고종이 승하하였으며, 1923년부터 1970년까지 서울특별시종로구 사간동 집에서 살며 일생을 보냈다.

참고문헌

  • 「경운궁중건배치도(慶運宮重建配置圖)」「덕수궁지도(德壽宮地圖)」
  • 문화재청, 『덕수궁복원정비기본계획』, 문화재청,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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