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릉친제(山陵親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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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장(治葬) 이후 산릉에서 왕이 친히 드리는 제사.

내용

국상(國喪) 기간 중에 거행되는 행사이므로 왕과 종친, 문무백관, 집사자들의 복식은 시기에 따라서 최복(衰服)이나 연복(練服) 혹은 담복(禫服)이다. 장소는 산릉의 정자각(丁字閣)이다. 행례 절차는 길례인 제사와 유사하지만, 참신(參神) 전에 먼저 곡을 하며 강신(降神)에는 삼상향(三上香)을 행하나 좨주는 없다는 점이 다르다. 종헌례가 끝나면, 다시 곡을 하고 사신한다. 이처럼 두 번 행하는 곡은 연제(練祭) 곧 소상(小祥) 뒤에는 행하지 않는다. 이 제사에서는 헌폐례(獻幣禮)와 음복례(飮福禮)를 행하지 않으며, 길례에서 사용하는 풍악도 쓰지 않는다. 슬픔이 더욱 간절하기 때문에 풍악을 울리지 않는 것이니, 이는 곧 ‘곡(哭)을 한 날에는 노래를 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산릉친제에 사용하는 술잔은 1437년(세종 19)에 그 제도가 정해졌다. 봉상시(奉常寺)에 소장하고 있던 은 술잔[銀瓚]을 도둑에게 잃어버린 것을 계기로 즉시 박연(朴堧)에게 명하여 다시 주조하게 하였다. 이전에는 찬(瓚)은 은, 작(爵)은 구리를 쓰고, 섭행에는 작은 구리, 찬은 나무를 썼다고 한다. 이때에 이르러 옛 제도를 참고해서 친향할 때의 찬과 작은 모두 은을 쓰고, 대행할 때의 찬과 작은 모두 구리를 쓰며, 친향할 때의 아헌과 종헌도 역시 은작을 쓰기를 항식(恒式)으로 하도록 했다. 찬작의 잔받침도 목점(木坫)에서 구리로 바꾸어 만들어서 사용토록 했다.

용례

詣仁陵山陵親祭 又行夕上食(『철종실록』 9년 8월 11일)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