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사숙배절차(倭使肅拜節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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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倭)의 사신이 왕을 뵙고 절하는 의례.

개설

왜는 일본열도에 난립하는 여러 소국을 일컫는데 후에는 일본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조선전기에는 대마도(對馬島), 일기주(一岐州), 일향주(日向州) 등의 여러 섬 지역에서 자주 왜사(倭使)가 찾아와 1439년(세종 21)에는 그 숫자가 1,300명에 달하여 사신 접대에 어려움이 있었다. 왜사가 조선의 왕을 찾아와 숙배(肅拜)하는 절차는 왜사의 잦은 방문과 관련되어 제정된 것이다.

연원 및 변천

왜사가 조선의 왕을 찾아와 숙배하는 절차는 오례로 구분한다면 빈례(賓禮)에 속하지만 그 절차는 오례서의 빈례 항목에 수록되지 않았다. 이는 조선이 왜에 대하여 외교적으로 큰 비중을 두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다만 일본 왕의 사신이 국서(國書)와 폐백(幣帛)을 가지고 찾아온 경우에는 이를 받는 수린국서폐의(受隣國書幣儀)를 행하였고 서폐(書幣)를 받는 의례를 마친 후에는 연향의례가 이어졌는데, 이러한 의례는 『세종실록』 「오례」에 빈례의 하나로 수록되어 차이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절차 및 내용

왜사숙배절차는 1425년(세종 7)에 마련되었다. 『세종실록』의 기록에 따른 절차를 보면, 각 관사(官司)가 차례로 선 후 봉례랑(奉禮郞)과 통사(通事)가 왜국 사신을 인도하여 서반(西班) 3품 자리의 위에 차례로 서면서 의례가 시작된다. 왕이 입장하기 전에 문무백관이 반열을 가지런히 하는 반제(班齊) 절차에 이어 모두 몸을 굽히는 국궁(鞠躬) 자세를 취하면 왕이 전(殿)에 오른다. 통사가 왜국 사신을 인도하여 전상에 올라가서 나아가 왕을 뵙고 난 후 내려가서 자리로 돌아간다. 통찬(通贊)이 “국궁”이라 하면 왕은 내전(內殿)으로 들어간다. 통사는 왜국 사신을 인도하여 연회하는 자리로 나아가고, 백관이 차례로 물러 나가면 의례를 마친다(『세종실록』 7년 4월 10일).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통문관지(通文館志)』
  •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