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축연(分軸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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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에 쓴 공신교서(功臣敎書)를 나누어 받은 공신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는 잔치.

개설

시나 그림, 그리고 교서 등을 축(軸)으로 만들어 여러 사람들이 나누어 가지거나 같이 받는 것을 분축(分軸)이라 하고, 이를 기념하여 개최하는 연회를 분축연(分軸宴)이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분축연은 공신교서를 받은 공신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는 잔치가 대부분이다. 공신교서는 비단에 적어 두루마리 형식으로 장황을 하여 공신들에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분축이라 하였다. 공신 책봉은 녹훈이 정해지면 회맹제(會盟祭)를 지내고 분축을 하였다. 회맹제는 왕과 공신들이 모여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내고 희생의 피를 마시며 단결을 맹세하는 의식이다. 회맹제와 분축은 별도의 의식이지만 조선후기로 갈수록 같은 날에 주로 거행하였다. 회맹제 때는 이전 공신들도 같이 참여하였기 때문에 이를 마치고 거행하는 회맹연도 신구 공신들이 같이하는 연회였다. 반면 분축은 새로 교서를 받는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의식이었다. 그에 따라 분축연에는 새로운 공신들만 참여하였다. 즉, 같은 날에 공신으로 책봉된 것을 기념하고 그들의 단결을 위한 연회였다.

연원 및 변천

분축연은 조선초기부터 공신 책봉이 있을 때마다 거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중대와 명종대에 회맹 후 열린 분축연은 왕이 공신들을 위해 나라에서 베풀어주는 연회로 묘사되어 있다(『중종실록』 2년 11월 1일)(『명종실록』 2년 윤9월 19일). 그러나 인조대에 이르러 분축연은 그 유래를 알 수 없는 사적인 연회라며 사간원(司諫院)에서 폐지를 주장하기도 하였다(『인조실록』 3년 4월 19일). 조선후기 분축연은 왕의 공식적인 행사는 아니었지만 그 설행을 막지 않았을 뿐 아니라 왕이 이를 위해 풍악을 하사하고 술을 내리는 것이 관례였다.

절차 및 내용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

분축연은 교서축(敎書軸) 외에도 시축(詩軸), 계축(契軸) 등을 받거나 나누어 가질 때 여는 잔치였다. 일종의 계회와 같이 행사에 참여한 것을 기념하면서 상호 단결력을 과시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사대부들 사이에 널리 행하였던 풍속이다. 대부분 연회나 행사 등의 모임을 기념하는 그림을 남겼으며(『명종실록』 15년 7월 22일) 시나 가요(謌謠)를 지어 축으로 남기기도 하였다(『광해군일기』 10년 2월 24일).

참고문헌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조선의 공신』,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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