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연(千叟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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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년 청의 강희제가 즉위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하여 개최하였던 큰 잔치의 명칭.

개설

천수연은 1712년 강희제(康熙帝)가 즉위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개최하였던 대규모 연회였다. 이후 1785년 건륭제(乾隆帝)도 자신의 나이 75세와 즉위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하여 천수연을 개최하였다.

조선에서 파견되어 건륭제의 천수연에 참석하였던 사은사(謝恩使)의 보고에 따르면 모두 3,600여 명이나 되는 인원들이 연회에 참석하였다고 한다. 이를 통하여 건륭제 재위기에 개최 되었던 천수연의 대략적인 규모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정조는 천수연 당시 건륭제가 직접 지었던 황제천수연시(皇製千叟宴詩)를 『동문휘고(同文彙攷)』에 수록하도록 지시하였다.

절차 및 내용

건륭제의 천수연 개최에 관한 내용이 처음으로 확인되는 것은 1784년(정조 8) 10월의 기록이다. 당시 조선에서 청의 예부(禮部)에 보냈던 자문(咨文)에는 다음 해 정월에 개최될 천수연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통해서 본다면 청은 이미 10월 이전에 1785년에 천수연이 개최된다는 사실을 조선에 알렸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천수연에 조선의 사신단 일행이 참석하도록 요청하는 내용을 미리 통지하였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당시 청에서는 1년의 연공(年貢)과 정사·부사(副使) 선정에 관여하여, 사신의 나이는 60살(60세) 이상 되는 사람들로 선발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조선의 사신으로 파견되어 건륭제의 천수연에 반드시 참석할 것도 함께 요청하였다(『정조실록』 8년 10월 8일).

이에 따라 정조는 이휘지(李徽之)를 진하사은겸동지정사(進賀謝恩兼冬至正使)로, 강세황(姜世晃)을 부사로, 이태영(李泰永)을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하였다. 정사와 부사를 모두 기로(耆老)의 신하들 중에서 임명한 것은 청의 요구에 따라서 천수연에 참석하기 위한 자격 조건을 맞추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정조실록』 8년 10월 9일).

조선의 사은사 일행은 1784년(정조 8) 12월 초8일에 북경에 도착해서 남소관(南小館)에 묵었다. 사은사 일행은 이후 북경에서 다양한 의례에 참여하면서 사신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다음 해 1월 초6일 건청궁(乾淸宮)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던 천수연에 참가하였다. 천수연의 참가자 중에는 105세가 되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정조실록』 9년 2월 14일)(『정조실록』 9년 2월 14일)(『정조실록』 9년 2월 14일).

정사 이휘지의 또 다른 보고 내용에는 천수연의 절차와 규모에 관한 기록이 간략하게 남아 있다. 이휘지의 보고 내용에 따르면 건륭제는 자신이 즉위한 지 50년이 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고사(故事)에 따라 조서(詔書)를 반포하여, 벼슬과 작위가 있는 사람들은 65세까지, 군사와 백성의 경우 70세 이상까지 모두 연회에 참가하도록 조치하였다고 한다. 아울러 건륭제의 조치에 따라 모두 3,600여 명이나 되는 인원들이 연회에 참석하였다는 사실을 알렸다(『정조실록』 9년 3월 22일). 이를 통하여 당시 청에서 개최하였던 천수연의 절차와 규모 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동문휘고(同文彙攷)』
  • 정은주, 「강세황의 연행활동과 회화: 갑진연행시화첩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 259, 한국미술사학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