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재(三聖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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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소멸하기 위해 칠성, 산신, 나한의 세 성인을 증명으로 승려들에게 재를 올리는 의식.

개설

불교에서의 ‘삼성(三聖)’은 극락삼성, 칠성·산신·독성을 일컫는 삼성 등 세 성인을 두루 칭할 때 쓰이는 용어이다. 불교의 세 성인으로 불리는 노사나불(盧舍那佛)·문수보살(文殊菩薩)·보현보살(普賢菩薩)을 한데 일컬어 삼성이라고도 하고, 극락세계의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아울러 극락삼성이라고도 한다. 또 많은 절의 삼성각에 모셔진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아울러 삼성이라고 하는데, 삼성재(三聖齋)는 이와 관련된다.

불교가 중국에 유입되면서 중국의 칠성신앙, 산신신앙 등과 습합하여, 사찰에는 이들을 모신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나한전 등의 전각이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이들에게 재를 올리는 의식도 생겨났는데, 삼성재나 나한재는 주로 재앙 소멸을 목적으로 설행되었다. 나한재는 나한을 증명으로 재를 올리는 의식인 반면 삼성재는 칠성과 산신, 독성 세 성인을 증명으로 재를 올리는 의식이다.

내용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주관한 삼성재는 1398년(태조 7) 평안도 안변 석왕사에서 단 1차례 행해졌다(『태조실록』 7년 8월 19일). 석왕사는 이성계의 원찰로 1386년(고려 우왕 12)에 응진전이 건립되었으며, 이성계가 왕으로 등극하기 이전 무학자초(無學自超)에 의해 오백성재가 개설되었다. 『설봉산석왕사기(雪峯山釋王寺記)』에 따르면, 1396년경 이성계의 왕조 개창을 미리 예견한 무학이 이성계에게 1,000일간 나한재를 올리라고 청했다. 이에 이성계는 무학의 권유에 따라 오백나한재를 개설했다. 조선 왕조 개창 이후 왕실에서는 나한재와 시왕재를 정기적으로 설행하기 위한 비용으로 석왕사에 위전(位田)을 지급했다. 이때 석왕사에서 정기적으로 설행된 삼성재는 조선 왕조의 개창에 대한 감사와 축원의 의미를 담은 의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398년에 치러진 삼성재는 천재지변을 없애기 위한 목적에서 설행된 것으로 보인다. 석왕사에서 삼성재가 개설되기 이틀 전에는 하늘과 땅에 괴이한 변고가 있어 강원도오대산 상원사와 금강산 표훈사 등의 절에서 법석이 베풀어졌고(『태조실록』 7년 8월 17일), 봉산(峰山)에서 나라의 괴이한 변고를 없애달라고 비는 해괴제(解怪祭)가 베풀어졌고, 금경소재도량(金經消災道場)이 행해졌는데, 이날 금성과 화성이 헌원성 분야로 들어가고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나타나는(『태조실록』 7년 8월 13일) 변고가 일어났다. 1주일을 간격으로 변고가 일어나고 그때마다 소재 의식이 행해졌으며, 또 왕에게 병이 생기는 재앙이 일어났다(『태조실록』 7년 8월 14일).

이 같은 정황으로 볼 때 석왕사의 삼성재는 자연 변고를 없애기 위한 나한재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지만 당시 삼성재의 소문(疏文)이 없는 한 설행 목적을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안변 석왕사에서 간행된 『권공제반문(勸供諸般文)』의 첫 장은 ‘시왕권공’이며, 이어지는 장이 ‘제불통청’의 나한청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후대의 기록이지만 석왕사에서 행해진 재 의식의 자료로 이해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사후의 천도 의식과 재앙의 소재 의식이 당시 불교가 담당한 국가 의식 대행의 두 축이었기 때문이다. 나한청의 유치문(由致文)으로 볼 때 나한재는 천가지 재앙을 소멸하고 만가지 복덕을 성취하고자 올리는 재의식이다.

석왕사에서 베풀어진 삼성재는 응진전의 삼성을 청해 공양을 올리고 곧 이어 16나한을 청하여 공양을 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 승려들에게 음식을 올리는 재승 또는 반승의 형태로 행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석왕사에서 치러진 삼성재는 오늘날의 삼성재와는 다소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개념이 칠성, 산신, 나한으로 정립된 것은 조선후기에 이르러서이다. 따라서 고려말 조선초에 치러진 삼성재에서는 오늘날과 다른 성인 세 분을 증명으로 모시고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 『설봉산석왕사기(雪峯山釋王寺記)』
  • 「권공제반문(勸供諸般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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