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일기(房上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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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입시한 사관(史官)이 작성하여 예문관(藝文館)에 보관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기.

개설

『방상일기(房上日記)』는 예문관에 소속된 사관 중 입시한 사관이 작성한 일기로 추정된다. 『방상일기』는 입시한 사관이 왕과 신하들 사이에 오고 간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날 입시한 영춘추관사(領春秋館事) 이하 관원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방상일기』는 현재 전하지 않는다.

편찬/발간 경위

흔히 사관이라 하면 예문관 소속의 정7품직 봉교(奉敎), 정8품직 대교(待敎), 정9품직 검열(檢閱) 등 8명을 지칭한다. 이들 사관은 사초(史草)시정기(時政記)의 작성 이외에도 입시하여 왕의 언행과 안건의 시비득실을 기록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방상일기』는 사관 중 입시한 상번(上番)의 사관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명종실록』 3년 2월 12일). 이렇게 작성된 일기는 아마도 예문관에 보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선조실록』 28년 2월 15일).

서지 사항

『방상일기』는 현재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인 서지 사항을 알 수 없다.

구성/내용

『방상일기』는 현재 남아있지 않아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몇몇 기록을 통해서 내용의 편린이 파악된다. 『방상일기』에는 군신(君臣) 사이의 대화 내용이 기록되었다. 1548년(명종 3)에 손홍적(孫弘績)이 상번 때 작성한 『방상일기』에 “왕이 사슴 꼬리를 좋아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여 추문(推問)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방상일기』는 열람이 자유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방상일기』에는 영춘추관사 이하 담당 춘추관 관원들이 날마다 자신의 이름을 적도록 하였다. 이는 어느 날 누가 담당 춘추였는지 후일의 참고 자료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광해군일기』 12년 11월 16일). 그러나 영춘추관사 이하가 기명하는 것은 제대로 잘 시행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 김경수, 『조선시대의 사관 연구』, 국학자료원,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