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법(司馬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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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무과의 복시에서 응시자가 강서에서 선택하는 무경칠서 중 한 책.

[개설]·

『사마법(司馬法)』은 무경칠서(武經七書) 가운데 한 책이다. 무경칠서는 『손자(孫子)』·『오자(吳子)』·『사마법』·『위료자(尉繚子)』·『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삼략(三略)』·『육도(六韜)』 순으로 이루어졌다. 이 병서는 무경칠서에 속하는 다른 책과 더불어 무과(武科)의 복시(覆試)에 응시하려는 응시생들의 교과서로 통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사마법』의 편찬과 관련하여 네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 번째 설은 전국시대 제(齊)나라의 대부 사마양저(司馬穰苴)가 저술하였다는 것이고, 두 번째 설은 『사마법』이 주나라 초기에 나왔는데 전국시대 제나라의 대부 사마양저가 그것을 계승하여 후대에 전하였고 다시 추론하여 책으로 묶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설은 강태공이 저술하였다는 것이고, 네 번째 설은 주공이 저술하였다는 것이다.

가장 유력한 설은 『사마법』이라는 책 이름이 주나라의 관직에서 딴 것이며, 전국시대 제나라 위왕 때 사마직을 담당하였던 전양저(田穰苴)가 주나라 때부터 전해 내려온 병법들을 편집·저술하여 묶어 낸 책이었을 것이라는 견해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역대 사마들의 집단적인 지혜의 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였다.

이 책은 고대 중국의 군사 경전으로서 법규나 규약에 해당하며, 실제적으로 고대 병법 사상들을 모아서 정리하여 정확성과 실행성이 간단명료하고 알기 쉽게 논술되어 있었다.

조선전기에는 무과 시험에 무예와 강서(講書)가 병행되었으나, 조선후기에는 무예만으로 무인을 선발하였다. 『사마법』은 조선전기 무과의 복시에서 강서 과목으로 채택된 무경칠서 가운데 하나였다(『태종실록』 2년 1월 6일). 이러한 병서를 시험 보는 목적은 장수로서 지략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였다.

서지 사항

무경칠서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사마법』은 1권으로 되어 있고, 인본(仁本)에서 용중(用衆)까지 5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구성/내용

『사마법』은 모두 5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표제를 간추려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제1편은 인본으로 정치의 기본을 다루었고 성왕(聖王)·현왕(賢王)·대신(大臣)들이 어떻게 천하의 만백성을 관리할 것인가에 대하여 논술하였다.

제2편은 천자지의(天子之義)로 ‘천하를 평정한’ 천자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논술하였다.

제3편은 정작(定爵)으로 ‘천하 평정’을 위한 전쟁 준비, 군대를 창건하고 군대를 다스리는 원칙들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제4편은 엄위(嚴位)로 전투 방법과 용인술에 대하여 논하였다. 전쟁의 목적은 승리에 있으므로 최선의 방법은 인애를 베풀어 적군과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적군과 싸워 승리하는 것은 결국 장군 한 사람의 승리, 즉 일인승승(一人勝)이라고 주장하였다.

제5편은 용중으로 군사를 지휘하는 기술을 말하였다. 이 편은 실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전투 원칙을 논하였다. 즉, 전투할 때에 지세는 뒤와 좌우의 삼면이 모두 높고 험해야 좋으며, 바람을 등지고 싸워야 한다든가, 또는 아군의 병력이 우세하면 정면 대결을 하고, 아군이 열세인 경우에는 변화무쌍한 전법으로 적군을 혼란시켜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들이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속대전(續大典)』
  • 『대전통편(大典通編)』
  • 『대전회통(大典會通)』
  • 『사마법(司馬法)』
  •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무경칠서』,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 김기동, 『중국병법의 지혜』, 서광사, 1993.
  • 곽낙현, 「무경칠서를 통해서 본 조선전기 무과시취에 관한 연구」, 『동양고전연구』 34집, 2009.
  • 장학근, 「선초 무경칠서의 도입 배경」, 『동서사학』 2, 1996.
  • 심승구, 「조선전기 무과 연구」, 국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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