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일기(摛文院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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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규장각의 부속 건물인 이문원(摛文院) 관련 일기.

개설

이문원은 정조대에 설치된 규장각에 부속된 시설로, 규장각 소속의 각신(閣臣)들이 근무하던 장소였다. 따라서 『이문원일기(摛文院日記)』는 규장각 각신들의 일상적인 업무 수행을 기록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일기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이문원일기』는 규장각 소속의 참하관인 대교(待敎)가 관장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1776년(정조 즉위년) 3월 정조는 선대왕들의 각종 어제(御製)와 어필(御筆)을 보관하기 위해 규장각을 설치하였다(『정조실록』 즉위년 9월 25일). 이후 규장각 기능이 왕실 도서관에 머물지 않고 점차 학문 연구 기관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봉모당(奉謨堂), 서고(西庫), 서향각(書香閣) 등 부속 건물들이 만들어졌다. 이문원 역시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곳으로, 어제의 봉안과(『정조실록』 5년 2월 13일) 함께 규장각 소속 각신들의 근무처로 활용되었다.

이문원은 당초 창덕궁의 후원에 위치했다가 1781년 3월에 영숙문(永肅門) 밖 국별장청(局別將廳)으로 옮겼다. 이전하면서 정정(正廳)에 어필로 써서 내린 ‘이문지원(摛文之院)’이라는 편액을 걸게 되었다(『정조실록』 5년 3월 10일). 공식적으로 이문원의 명칭은 1781년 3월부터 시작되었으나, 기록상으로는 이미 1779년 3월부터 명칭이 확인된다(『정조실록』 3년 3월 6일). 따라서 『이문원일기』도 규장각이 설치되던 초기부터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규장각 소속의 대교가 관장하였다(『정조실록』 5년 2월 13일).

서지 사항

현재 『이문원일기』라는 명칭으로 전해지는 책은 확인되지 않는다. 규장각의 경우 이와는 별도로 『규장각일기』와 같은 기록이 작성되었다. 그러나 규장각과 관련해서 현존하는 도서로 확인되는 것도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내각일력(內閣日曆)』,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장서각에 소장된 1907~1910년까지의 기록인 『규장각일기』가 있을 뿐이다.

구성/내용

『이문원일기』는 실제 도서가 확인되지 않아 그 구체적인 내용을 추적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다만 몇몇 기록을 통해서 유추해보면, 『이문원일기』는 일자별로 기록되었으며, 각신의 입직과 출입 현황을 비롯해 규장각의 업무 수행과 관련한 내용이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문원일기』에는 초계문신(抄啓文臣)을 대상으로 한 진강(進講) 때의 논의 내용도 수록되었고, 각신이 입대(入對)할 때의 의절(儀節)이 기재되었다(『정조실록』 6년 5월 27일). 1781년 7월에는 왕이 창덕궁 성정각(誠正閣)에서 승지인 서유방(徐有防)과 이진규(李晉圭)를 소견하고는 『이문원일기』를 읽게 한 적도 있었다. 아마도 진강 때의 내용이 포함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