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습서(東垣拾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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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금·원시대의 이고·주진형 등 저명한 의학자들의 저술 10종을 모아 놓은 책.

개설

조선후기에 편찬된 『속대전(續大典)』과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 의과 취재(醫科取才) 시에 고강서(考講書)로 쓰인 의학 교재였다. 『동원십서(東垣十書)』 혹은 『동원십종의서(東垣十種醫書)』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10종의 편집의서였다.

편찬/발간 경위

『동원습서(東垣拾書)』에는 이고(李杲)·주진형(朱震亨) 등 금(金)·원(元)시대의 저명한 의학자들뿐만 아니라 송대나 명대의 저술도 섞여 있기 때문에 『동원습서』라는 이름은 적절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동원(李東垣)의 명성에 편승하여 대중의 욕구에 부응하고자 임의로 편집하여 발행한, 이른바 통속의서로서 출판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견해에 대한 근거로는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 “왕호고(王好古)는 그 학문이 이고로부터 출발하였지만 주진형·왕리(王履)·제덕지(齊德之) 등은 모두 이씨의 학맥과는 연원이 다르기 때문에 이 책에 동원(東垣)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근거가 없다.”고 하였고, 또한 이 책이 서사간본(書肆刊本)으로 권질(卷帙)을 억지로 맞추어 놓았기 때문에 서명과 실제 내용이 걸맞지 않다고 비평하였다.

서지 사항

현존하는 판본으로는 명대 가정(嘉靖) 연간의 매남서옥(梅南書屋) 각본(刻本)을 위시하여 여러 판본이 있으며, 조선판은 명 가정 연간의 매남서옥본(梅南書屋本)을 중각(重刻)한 것과, 1455년(세조 1) 을해자를 새로 주조하여 간행한 활자본이 있다. 1585년(선조 18)에 간행한 『고사촬요(攷事撮要)』에는 나주판이 기록되어 있고, 그 밖에 1765년(영조 41)에 나온 혜민서 간본이 있다.

혜민서(惠民署)에서 펴낸 간본은 당시 혜민서 제조인 홍계희(洪啓禧)가 전의감 제조인 심성진(沈星鎭)과 상의하여 양사(兩司)가 합의하고, 이 책에 익숙한 의관을 선발하여 교정관으로 삼아 여러 판본을 모아 수교(讎校)하여 활자로 간행한 것이었다. 이렇게 합동으로 책을 간행한 것은 아마도 책의 분량이 적지 않고 두 기관의 의관이 모두 사용할 책이어서 역할을 나누어 분담한 것으로 보인다.

구성/내용

전서는 12종 20권으로 주제별 전문서를 골고루 모아 펴냈다. 이 책에 수록된 의서를 살펴보면, 송대 최가언(崔嘉彦)이 저술하고 이고가 평주(評注)를 단 『맥결(脈訣)』 1권, 이고의 『비위론(脾胃論)』 3권, 『내외상변혹론(內外傷辨惑論)』 3권, 『난실비장(蘭室秘藏)』 3권인데, 이 4종은 이동원의 저작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왕호고가 지은 『차사난지(此事難知)』 2권, 『탕액본초(湯液本草)』 3권, 주진형의 『격치여론(格致餘論)』 1권, 『국방발휘(局方發揮)』 1권, 제덕지의 『외과정의(外科精義)』 2권, 왕리의 『의경소회집(醫經溯洄集)』 1권, 왕호고(王好古)의 『의루원융(醫壘元戎)』, 『반론췌영(癍論萃英)』 1권이 있었다. 맨 앞의 『맥결』과 맨 뒤의 『반론췌영』은 부록의 형태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10종 의서라고 하였는데, 그중 왕호고의 책을 제외하더라도 『격치여론』·『국방발휘』·『외과정의』·『의경소회집』 등은 이동원과 무관하였다.

원서는 1529년(중종 24)에 처음 만들어졌으나 편집자는 이름을 남기지 않았으며, 그 뒤 1881년(고종 18)에 중간하면서 앞서 말한 이유로 아예 이 책에서 ‘동원(東垣)’이라는 이름을 삭제해 버리고 ‘의학십서’라고 명명하였다.

한편 이 책을 펴낸 혜민서 제조홍계희는 직접 발문을 남겼는데, 그는 1725년(영조 1) 을사과(乙巳科)에 등제(登第)하여 이조 판서에 오른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보(純甫), 호는 담와(淡窩)였다. 일찍이 문재(文才)가 있어 『주자대전(朱子大全)』을 교정하고 『삼운성회(三韻聲滙)』·『경세지장(經世指掌)』과 같은 책을 저술하였다.

아울러 당시 전의감 제조를 지낸 심공(沈公)은 심성진으로 확인되었다. 『승정원일기』 등 관련 기록에 의하면, 이 책이 나온 시점인 1765년(영조 41) 9월에는 이미 박상덕(朴相德)으로 교체되었기 때문에 발문에서는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심성진은 호가 담와(澹窩)로 당시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겸직하다가 70세 고령으로 사직하고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이 책은 비록 학술적 계통이 서로 다른 여러 책을 함께 묶어 놓았지만 초학자가 익히기 쉬운 맥학진법을 비롯하여 기초 이론에 해당하는 비위론(脾胃論), 진단 기초인 내외상변(內外傷辨), 병인병리설을 다룬 난실비장(蘭室秘藏) 그리고 상한육경변증과 임상 병론이 들어 있는 차사난지(此事難知), 나아가 본초약물은 탕액본초(湯液本草), 치법용약론은 격치여론(格致餘論), 외과 처치법은 외과정의(外科精義), 상한온병과 역병에 대해서는 의경소회집(醫經溯洄集), 의루원융(醫壘元戎), 반론췌영까지 골고루 망라하여 교육용으로 적당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 동양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동양의학대사전』, 경희대학교 출판국, 1999.
  • 안상우, 「조선의관 講讀한 各家學說-『醫學十書』」, 『고의서산책』 285회, 민족의학신문,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