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실의(天主實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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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가 중국인들에게 천주교를 전하기 위해 한문으로 저술한 책.

개설

마테오 리치([利瑪竇], Matteo Ricci)가 호교론(護敎論)적 입장에서 서술한 서학서인 『천주실의』는 기독교 교리 소개를 위한 본격 교리서라기보다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바탕으로 쓰여진 기독교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마테오 리치는 중국 지식인들을 합리적 논리로 설득시키기 위해 삼위일체나 예수의 부활 등 계시 신앙적 요소를 최소화하는 한편 중국 경전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시경』이나 『서경』 등 고대 경전에 등장하는 상제(上帝)가 곧 기독교의 신 천주(天主)라고 주장하는 등, 전략적으로 기독교를 유교적 전통에 연결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신유학 이론을 강력히 비판하는데 이는 신유학의 태극이나 리가 인격적 창조주와 다른 비인격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마테오 리치는 『천주실의』에서 고대 중국인들이 천주를 신앙했지만 무신론적인 신유학이 등장해 고대 중국의 유신론적 전통을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상제가 곧 천주라는 주장과 더불어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논쟁이 된 것은 『천주실의』에 등장한 스콜라 철학의 영혼론이었다. 마테오 리치는 아리스토텔레스-토마스 아퀴나스 이론에 따라 만물에게는 영양과 생식을 담당하는 ‘생혼(生魂, 식물혼, anima vegetabilis)’, 감각과 운동 등을 담당하는 ‘각혼(覺魂, 동물혼, anima animalis)’ 그리고 이성적 판단과 추론의 토대인 ‘영혼(靈魂, 이성혼, anima rationalis)’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마테오 리치는 인간만이 생혼, 각혼과 더불어 이성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이 영혼은 사후에도 소멸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전통적인 신유학의 심성론과 다른 인간관을 전개한다. 중국 고대의 상제가 곧 천주이며 인간의 혼이 불멸한다는 그의 주장은 신유학에 토대를 둔 중국과 조선 지식인들의 비판을 받았다. 특히 상제가 곧 천주라는 그의 주장은 이후 예수회가 사용한 천주, 상제 등의 용어를 둘러싸고 발생한 유럽의 전례 논쟁에 빌미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천주실의』는 간행 직후부터 조선과 일본에 전해졌는데 1614년(광해군 6) 간행된 이수광(李睟光)의 유서(類書) 『지봉유설』에 『천주실의』의 대략적인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이후 이익(李瀷)은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을 지어 『천주실의』의 핵심 내용에 대해 객관적으로 논평하였고 정약용 역시 『천주실의』의 영향을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이익의 문인이었던 신후담(愼後聃)은 『서학변(西學辯)』을, 안정복(安鼎福) 등은 「천학고(天學考)」와 「천학문답(天學問答)」 등을 저술하여 척사론적 입장에서 비판하기도 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저술 연대는 1593∼1596년으로 알려져 있으며 예수회에 보고된 명칭은 De Deo Verax Disputatio[하느님에 대한 참된 토론]이다. 1603년(명 만력 31)에 북경에서 정식으로 간행되기 이전에 이미 초고본(草稿本)이 널리 유통되었다. 마테오 리치가 『천주실의』를 저술한 것은 전임자였던 루기에리([羅明堅], Michele Ruggieri)가 1584년(명 만력 12)에 복건성의 유생(儒生) 영착(郢斲)의 조력으로 편찬한 최초의 교리서 『천주실록(天主實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천주실록』은 전교 초기의 정보 부족으로 인해 예수회를 천축(天竺)에서 온 승려[僧]로 묘사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테오 리치는 『천주실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되, 자신이 익힌 중국 고대 경전을 활용하여 새로운 책『천주실의』를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마테오 리치는 이성적 추론을 통해 중국인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과 부활 같은 계시 신앙적 내용들을 최소화하고 스콜라 철학의 신론과 영혼론 등을 통해 기독교의 핵심 원리를 설명하고자 했다.

조선에서는 영의정채제공이 정조에게 서학 유포에 관해 보고하며 이 책을 언급한 바 있고 윤지충, 권상연, 이기경 등 서학에 대한 혐의로 조사받은 이들도 이 책을 읽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정조실록』12년 8월 3일).

서지 사항

1601년(명 만력 29) 마테오 리치를 도왔던 중국 고위 관료 풍응경(馮應京)이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결국 1603년 북경에서 정식으로 간행되었다. 이후 1607년 항주(杭州)의 연이당(燕貽堂)에서 재간행되었다. 이 책은 1627년에 이지조가 편찬한 예수회 한역서학서 총서인 『천학초함(天學初函)』의 이편(理編)에 수록되어 있고 후에 청대의 중국 최대 총서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실려 있다.

구성/내용

상·하 2권, 8편, 174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주교의 내용을 전달하려는 서양 선비[西士]와 그와 토론하는 중국 선비[中士]의 대담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본문은 마테오 리치 자신의 「천주실의인(天主實義引)」과 1601년에 풍응경이 쓴 「천주실의서(天主實義序)」, 이지조(李之藻)가 쓴 「천주실의중각서(天主實義重刻序)」에 이어 수편(首篇)인 제1편 천주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그것을 주재하며 안양하심을 논함[論天主始制天地萬物而主宰安養之], 제2편 세상 사람들이 천주를 잘못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해석[解釋世人錯認天主], 제3편 사람의 영혼은 불멸하여 동물의 각혼과는 크게 다름을 논함[論人魂不滅大異禽獸], 제4편 귀신 및 사람의 영혼에 관한 이론(異論)을 변석하고, 하늘 아래 만물은 한 몸이라고 할 수 없음을 풀이함[辯釋鬼神及人魂異論, 而解天下萬物不可謂之一體], 제5편 윤회의 육도와 살생을 금하는 오류를 논박하며 재계와 소식의 올바른 뜻을 보임[辯排輪廻六道戒殺生之謬說而揭齋素正志], 제6편 의지는 소멸될 수 없음을 해석하고, 아울러 사후에는 반드시 천당과 지옥의 상벌로 세상 사람들이 행한 선악에 응보가 있을 것임을 논함[釋解意不可滅, 並論死後必有天堂地獄之賞罰以報世人所爲善惡], 제7편 인간 본성의 본래 선함을 논하고, 천주 문사의 바른 학문을 서술함[論人性本善, 而述天主門士正學], 제8편 서양 풍속이 숭상하는 것을 총괄하여 거론하고, 천주교의 도리를 전하는 선비가 결혼하지 않는 의미를 논하며, 아울러 천주께서 서양에 강생하신 유래를 해석함[總擧大西俗尙, 而論其傳道之士所以不娶之意, 並釋天主降生西土來由]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콜라 철학적 관점에서 비인격적 원리인 태극(太極)과 리(理)를 비판하고 인격적 창조주인 신이 세계를 창조하였으며 인간의 영혼은 사후에도 불멸한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전한다.

참고문헌

  • 김선희, 『마테오 리치와 주희, 그리고 정약용』 심산, 2012.
  • 마테오 리치 저·송영배 외 역, 『천주실의』,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 張曉林, 『天主實義與中國學統-文化互動與詮釋』, 學林出版社,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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