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정씨(昭容鄭氏)

sillokwiki
Silman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1월 9일 (화) 22:48 판 (XML 가져오기)

이동: 둘러보기, 검색




총론

[?~? = ?]. 조선 5대 임금인 문종(文宗)의 후궁. 본관은 동래(東萊)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을 지낸 정갑손(鄭甲孫)이며, 어머니는 김양남(金揚南)의 딸인 강릉 김씨(江陵金氏)이다. 할아버지는 중추원 사(中樞院使)를 지낸 정흠지(鄭欽之)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지낸 정부(鄭符)이다. 오라버니는 정우(鄭俁), 정숙(鄭俶)이고, 남동생은 정오(鄭烏)이다. 여동생은 이중원(李重元)의 처, 순창인(淳昌人) 조이(趙怡)의 처, 이순(李洵)의 처, 광주인(廣州人) 안종도(安從道)의 처, 권록(權祿)의 처, 광주인(廣州人) 안신(安信)의 처, 평강인(平康人) 채윤공(蔡允恭)의 처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

문종의 후궁

정소용(鄭昭容)은 아버지인 정갑손(鄭甲孫)과 어머니인 김양남(金揚南)의 딸인 강릉 김씨(江陵金氏)와의 사이에서 3남 8녀 중의 장녀로 태어났다. 1427년(세종 9) 세종은 문종이 세자로 있을 때 김오문(金五文)의 딸을 세자빈으로 삼아 휘빈(徽嬪)에 봉하였는데,(『세종실록』 9년 4월 9일) 김휘빈은 문종에게 압승술(壓勝術)을 사용하다가 발각되어 폐출되었다.(『세종실록』 11년 7월 20일) 그 후 1429년(세종 11년) 세종은 두 번째 세자빈을 봉려(奉礪)의 딸로 삼고 순빈(純嬪)으로 봉하였다.(『세종실록』 11년 10월 15일) 그러나 봉순빈과 문종의 사이가 좋지 않자 후사를 걱정한 세종은 세자인 문종의 후궁을 들이기로 결정하였다.(『세종실록』 18년 10월 26일)

1431년(세종 13) 세종은 세자인 문종의 후궁을 간택하였는데, 가산군지사(嘉山郡知事)권전(權專),직예문관(直藝文館)정갑손(鄭甲孫), 장흥고(長興庫) 직장(直長)홍심(洪深)의 딸을 선택하였다.(『세종실록』 13년 1월 19일) 이어 세종은 정갑손을 장령(掌令)으로 삼고,(『세종실록』 13년 2월 7일) 쌀과 콩 30석을 내려주었다.(『세종실록』 13년 2월 12일) 얼마 후 정갑손의 딸인 정소용(鄭昭容)은 궁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승휘(承徽)에 봉해졌다.(『세종실록』 13년 3월 13일)

정소용은 문종과의 사이에서 1남을 낳은 것으로 보이는데(『세종실록』 28년 6월 6일) 아들을 낳은 후 승휘에서 소용(昭容)으로 진봉(進封)된 것으로 여겨진다.(『문종실록(文宗實錄)』 8년 6월 26일)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선원계본기략(璿源系譜記略)』
  • 지두환, 『문종대왕과 친인척』, 역사문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