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정(三溪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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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탕춘대(蕩春臺) 친림 시사(試射)에서 행전(行殿)으로 삼았던 김흥근의 정사(精舍).

개설

삼계정은 1856년(철종 9) 3월 세도가문인 안동김씨의 거두 김흥근(金興根)이 삼계동(三溪洞) 오른쪽에 지은 정사로, 고종이 즉위하여 탕춘대에 친림하는 시사를 할 때 이곳을 행전으로 삼았다(『고종실록』 4년 9월 20일). 이후 이곳은 고종의 아버지인 대원군(大院君)의 소유가 되어 석파정(石坡亭)이라 했다.

위치 및 용도

삼계정이 있던 곳은 창의문 밖 삼계동으로 서울 인왕산 북쪽의 한 계곡이다. 현재 종로구 부암동에 있으며 고종의 친림 시사에 사용되었고 이후 대원군의 별장이 되었다. 그 옆에는 ‘삼계동’이라고 새긴 바위가 있다. 현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이다. 인왕산의 바위와 계곡물이 어울려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변천 및 현황

고종이 시사를 이유 삼아 삼계정에 행차한 것은 1867년(고종 4)이었다. 1869년 12월 『승정원일기』의 기사에는, 왕이 대원군과 부대부인에게 드릴 속미음을 달여 도승지에게 삼계정 대원군의 행차소에 전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으로 보아 이때 이미 대원군의 소유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흥근에게 뺏다시피 이곳을 얻은 대원군은 정자의 앞산이 모두 바위라 ‘석파정(石坡亭)’이라 이름 지었으며 삼계동 정자라고 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관련사건 및 일화

『매천야록(梅泉野綠)』 기사에 의하면, 대원군이 김흥근에게 이곳을 팔라고 하였으나 듣지 않자 대원군은 그렇다면 하루만 놀게 해 달라고 했다. 대원군은 왕에게 권하여 함께 갔다. 왕의 발길이 머문 곳을 신하된 도리로 감히 거처할 수 없었으므로 김흥근은 다시 삼계동에 가지 못하였고, 이로 인하여 이곳은 대원군의 소유가 되었다 한다. 실제로 국왕이 행차한 지역의 건물에 숙소를 정하면 그곳을 행궁이라고 하여 민간인이 거주하기 어렵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매천야록(梅泉野綠)』
  • 『석동유고(石洞遺稿)』
  • 『운양집(雲養集)』
  • 『이십일객지계(二十一客之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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