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명관(錄名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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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시험 때 응시 등록 절차인 녹명의 업무를 담당하는 관원.

개설

과거 시험의 녹명(錄名) 때 응시자가 제출한 서류를 근거로 응시 자격을 심사하고 응시자의 명단을 작성하였다.

담당 직무

응시자들은 과거 시험 전에 아버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의 관직·성명·본관·거주지를 기록한 사조단자(四祖單子)와 응시자의 신원 보증인이 써 주는 증명서 보단자(保單子), 답안 작성용 용지 시지(試紙) 등을 제출하고 응시 자격을 심사받은 후 응시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과정을 ‘녹명(錄名)’이라고 하였다. 녹명관은 응시자가 제출한 서류를 근거로 응시 자격을 심사하고 응시를 허가하는 임무를 맡았다(『선조실록』 38년 7월 2일). 신원 상의 하자나 서류의 허위 사실 기재, 시지의 규격과 품질 기준 위반, 과거 응시 정지 이력 등 법제적으로 응시를 불허하는 조건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시험장을 배정하는 업무 등도 담당하였다(『영조실록』 10년 9월 4일).

녹명을 담당하는 관서나 녹명관은 시험 종류에 따라 달랐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1차 시험 격인 문과 초시의 경우 성균관 유생만이 참여하는 관시(館試)는 성균관, 한성시는 한성부와 성균관·예문관·승문원·교서관 사관(四館)의 7품 이하 관원, 향시는 관찰사가 정한 임시 관료인 차사원(差使員)이 담당하였고, 2차 시험 격인 복시는 사관의 7품 이하 관원이 담당하였다. 생원진사시의 경우 초시 녹명관은 문과 초시와 동일하며 복시는 사관의 7품 이하 관원이 담당하였다. 무과는 초시 중 원시(院試)는 훈련원, 향시는 병마절도사가 지정한 차사원, 복시는 병조와 훈련원 7품 이하 관원이 담당하였다. 잡과(雜科)는 초시는 해당 관서에서, 복시는 예조와 해당 관서의 제조가 담당하였다.

변천

이후 연대기에서 확인되는 기사를 보면 인원에는 변화가 있으나 서울에서 시행하는 문과와 생원진사시는 사관, 무과는 훈련원, 잡과는 해당 관서, 향시는 관찰사나 병마절도사가 지정한 차사원이 녹명관을 담당하여 제도상의 큰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경국대전(經國大典)』
  • 『과거사목(科擧事目)』
  • 『통문관지(通文館志)』
  • 『무과총요(武科總要)』
  • 이성무, 『한국의 과거제도』, 집문당, 2000.
  • 조좌호, 『한국과거제도사연구』, 범우사, 1996.
  • 차미희, 『조선시대 문과제도연구』, 국학자료원, 1999.
  • 원창애, 「조선시대 문과급제자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학위논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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