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서린(孔瑞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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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483년(성종 14)∼1541년(중종 36) = 59세.] 조선 중기 중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사헌부 대사헌(大司憲)이다. 자(字)는 희성(希聖), 응성(應聖)이고, 호(號)는 휴암(休巖)이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며,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본관은 곡부(曲阜)이고, 거주지는 수원(水原)이다. 아버지는 현감(縣監)공의달(孔義達)이고, 어머니 죽산박씨(竹山朴氏)는 군수(郡守)박원인(朴元仁)의 딸이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서,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와 친분이 두터웠다.

중종 시대 활동

1507년(중종 2) 사마시(司馬試)의 생원(生員)과 진사(進士)의 양과에 합격하였으며,[<사마방목>] 그 해에 식년(式年) 문과의 갑과(甲科) 2등으로 급제하였는데, 나이가 25세였다.[<문과방목>]

1509년(중종 4) 사간원 정언(正言)으로서 수령에 대한 전최(殿最)를 바르게 할 것과 기신재(忌晨齋)를 혁파할 것을 건의하였다.

1512년(중종 7) 이후 홍문관 부수찬(副修撰)⋅수찬(修撰)⋅사헌부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1516년(중종 11) 사헌부 장령(掌令)으로서 현명하고 능력 있는 인물을 등용해야한다고 건의하였으며, 이듬해 시강관(侍講官)으로 경연에 참석하여 언로(言路)의 확장을 주장하였다.

1518년(중종 13) 사간원 사간(司諫)이 되었고, 그해에 자급(資級) 뛰어넘어 대사간(大司諫)에 임명되었다.

1519년(중종 14) 우부승지(右副承旨)로 발탁되었고, 이어 좌부승지가 되었다. 기묘사화가 일어나면서 조광조 등 사림파와 함께 투옥되었으나 곧 풀려나 병조 참의(參議)에 임명되었으며, 1522년(중종 17) 좌승지(左承旨)에 임명되었다. 공서린은 기묘사화 이후에 비록 파직은 당하지 않았으나 심정(沈貞)과 허항(許沆)에게 미움을 받아 조정에 용납되지 못했다. 그 후 김안로(金安老)와 채무택(蔡無擇)이 집권하면서 배척을 받아 양양부사(襄陽府使)⋅파주목사(坡州牧使)⋅성천부사(成川府使) 등 외직(外職)을 전전하였다. 김안로가 죽은 뒤, 경주부윤(慶州府尹)과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540년(중종 35) 홍문관 부제학에 이어 사헌부 대사헌(大司憲)이 되었으나, 이듬해 1월 3일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품과 일화

성품이 온아하고 자상하며 선(善)을 좋아했다. 관청에 나가거나 집에 있거나 항상 검소하게 생활하였다.

묘소와 후손

묘소는 경기도 용인(龍仁)의 완장동(完墻洞)에 있고, 가정(柯汀) 조진관(趙鎭寬)이 지은 비명(碑銘)이 남아있다.

부인 파평윤씨(坡平尹氏)는 부사(府使)윤승세(尹承世)의 딸인데, 자녀는 2남을 두었다. 장남은 참봉(參奉)을 지낸 공겸(孔謙)이고, 차남은 감찰(監察)을 지낸 공심(孔諶)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가정유고(柯汀遺稿)』
  • 『간옹집(艮翁集)』
  • 『국조보감(國朝寶鑑)』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기묘록속집(己卯錄續集)』
  • 『기묘제현전(己卯諸賢傳)』
  • 『대동야승(大東野乘)』
  • 『동각잡기(東閣雜記)』
  • 『명곡집(明谷集)』
  • 『명미당집(明美堂集)』
  • 『묵재집(默齋集)』
  • 『번암집(樊巖集)』
  • 『사재집(思齋集)』
  • 『송재집(松齋集)』
  • 『순암집(順菴集)』
  • 『암서집(巖棲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우정집(憂亭集)』
  • 『은봉전서(隱峯全書)』
  • 『음애집(陰崖集)』
  • 『정암집(靜菴集)』
  • 『죽계지(竹溪志)』
  • 『지퇴당집(知退堂集)』
  • 『지호집(芝湖集)』
  • 『청선고(淸選考)』
  • 『충암집(冲庵集)』
  • 『충재집(冲齋集)』
  • 『학포집(學圃集)』
  • 『한강집(寒岡集)』
  • 『해동잡록(海東雜錄)』
  • 『홍재전서(弘齋全書)』